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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목 Sep 02. 2024

너의 침범

옷장을 가득 채운 검고 각진 옷가지는

태초부터 숨이 말라버린 나에게 갖추는 예의

검은 구두

검은 땅

검은 상자에 투영된 검은 그림자


매일 같이 주어지는 제 몫을 해내려

검은 캔버스 위에 검은 물감을 덧바른다


슥 슥

의미 없는 붓질에 원단은 차츰 무거워지고

스윽 슥

결국 생겨나는 건 또 하나의 검은 상자


캔버스의 한쪽 귀퉁이

무심코 발견한 붉은 점에 나는 붓질을 멈춘다

잠시 멈추어 보라 내게 보내는 신호 같아


그저 앞만 볼 줄 알았던 모가지가 삐걱대며 돌아가니

시선 끝에 네가 있다


아마 이 꽃잎은 너의 붓끝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네 캔버스 속엔 사계절을 담은 찬란한 풍경화

황홀경에 나는 드디어 첫 숨을 들이켠다


붉어진 뺨에 괜스레 너의 침범을 건드리니

황량한 대지에 결국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이제 나는 목이 마르다

이제 나는 견딜 수 없다

이제 나는 검은 땅을 박찬다


검은 구둣발에도 꽂은 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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