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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목 Sep 23. 2024

호수보다는 바다가 되길(2)

소설

 날씨 때문인지 배어 나온 땀에 남우의 손이 끈적거렸다. 에녹은 미간을 찌푸렸다가도 금세 남우가 이끄는 방향으로 관심을 쏟았다.

 다소 김새는 목적지였다. 부모님께 혼이 날 위험을 안고서 가야 하는 곳이 겨우 뒷동산이라니.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뒷동산은 산이라 불리기엔 너무 낮아 경치를 보기에도, 관리되지 않은 길은 등산을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분명 이름도 있을 터인데 누구 하나 관심이 없는 터라 동네 사람들에겐 이처럼 ’뒷동산‘이나 ‘그 교회 뒤에 있는 작은 산’ 쯤으로 불렸다.


 에녹은 작년에 딱 한 번 뒷동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녹림 교회에서 주최하는 달란트 행사에 참여하면서였다. 행사 일정 중 하나가 뒷동산 구석구석 숨겨놓은 달란트를 찾는 것이었고, 그날만큼은 뒷동산에게도 ‘에덴동산’이란 이름이 붙었더랬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비슷한 풍경만을 제공하는 나무들 속에서 아이 손바닥만 한 달란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들도 길을 잃기 십상이었고, 결국 달란트를 숨기는 임무를 맡았던 주일학교 선생님조차 모든 달란트를 회수하지 못한 채 회심의 보물찾기는 크게 실패했다.


 이후 다시 오르게 된 뒷동산은 ‘에덴동산’이었던 시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아니, 지금은 신도들도 없는 탓에 에녹은 그 분위기가 더욱 음습하다고 느꼈다. “뒷동산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만약 예배에 빠지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면 목사님께 이를 거야.” 에녹의 똑 부러지는 협박에도 앞서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한 탓인지 남우는 답이 없었다.

 조급한 성미를 못 이긴 에녹이 재차 닦달했다.


 “대체 무얼 보러 가는 지는 말을 해줘야.......“


 “쉿.” 그러나 어린아이의 짧은 인내심은 남우의 단호한 제지에 날름 입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돌린 남우는 제 입술 위에 집게손가락을 교차하여 놓고 있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땐 조금 전과 사뭇 다른 신중함이 느껴졌다.

 덩달아 에녹도 발소리를 죽였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썩은 이파리의 잔해로 인해 자취를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지만, 때마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가 도움을 주었다.

 주변의 것보다 두 배는 더 굵직한 나무 뒤에 도달해서야 남우는 걸음을 멈췄다.

 에녹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우의 뒤에 바짝 붙었다. 조용히 다가가야 한다면 상대는 필시 귀가 예민한 무언가일 것이다. 야생 동물일까? 등에 신비한 무늬를 담은 곤충일 수도 있었다. 언제 불만을 품었냐는 양 에녹은 남우가 이끈 비밀스러운 술래잡기에 폭 빠져들었다.

 하지만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끈기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때라고 예외는 없었다. 어느덧 고개를 빼꼼 내민 남우에게 질세라 에녹은 그보다 한 발짝 더 옆으로 크게 내디뎠다.


 “너희 거기서 뭐 하니?


 모든 신경을 나무 너머로만 쏟고 있었던 두 사람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매우 놀랐다. 에녹은 숨을 들이켠 채로 멈춰버렸고, 남우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찰나에도 에녹은 비명을 지른 것이 자신이 아니라 남우란 사실에 안도했다.

 더욱 먼저 목소리의 익숙함을 깨달은 에녹이 태연한 척 뒤를 돌았다.


 “수아 언니!”


 예상대로였다. 이토록 영령한 목소리의 주인은 에녹이 아는 한 오수아뿐이었다. 타고난 달란트를 지닌 수아가 녹림 교회 성가대원으로 발탁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에녹은 수아가 찬송가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를 독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수아는 학업에 매진해야 할 시기임에도 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나오는 착실한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매번 상위권을 유지하니 녹림 교회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놀이를 하길래 예배에도 빠진 거야?“


 수아는 꾸짖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에녹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럴 때면 에녹은 눈은 감고 수아의 다정한 손길을 음미하고는 했다. 여타 다른 어른들의 손길과 수아의 것은 결이 달랐다. 수아는 에녹에게도 큰 자랑이었으므로. 수아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총명한 두뇌를 에녹은 흠모했다.

 작년 자신의 생일날, 에녹은 수아에게서 엽서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엽서엔 수아가 직접 그린 작은 바다가 담겨있었다. 뒷면에는 ‘에녹아. 생일 축하해. 호수보다는 바다가 되길.’이라는 문구도 함께였다. 이 엽서는 이후 에녹의 보물 1호로 자리 잡았고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남우 오빠가 여기 재밌는 게 있다고.......“


 넋이 나간 채 답을 하던 에녹은 급히 말끝을 흐리며 남우를 흘끗거렸다. 길을 잃었단 핑계를 대기로 했던 약속이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우는 에녹을 탓하기는커녕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에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런데 내가 먼저 길을 잃어서...... 그래서 남우 오빠가 나를 찾다가 같이 길을 잃었는데...... 그러다가.......“

 “그랬구나. 우리 에녹이.”


 어설픈 변명에도 수아는 다 이해한다는 듯 한 번 더 에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언니는? 언니는 예배에 안 가고 여기서 뭐 해?“


 에녹의 물음에 수아는 잠시 골몰하는 듯싶더니 이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나도 길을 잃었거든.“


 에녹의 눈이 커졌다. 수아처럼 대단한 사람도 길을 잃는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보다 수아와 저의 닮은 점을 발견했음에 기뻤다.

 곧 하산하기 위해 수아가 앞장섰다. 그 뒤를 두 아이가 따랐다. 길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 에녹은 잊고 있던 것이 떠올라 손바닥을 마주쳤다.


 “근데 오빠. 대체 재미있다는 게 뭐야?”


 하지만 남우는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핏기 없던 얼굴에 이제는 제법 혈색이 돌았지만, 눈동자는 다소 불안해 보였다.

 에녹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정신이 팔린 남우의 팔뚝을 에녹이 찰싹 때렸다.


 “수아 언니가 목사님께 이르진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제야 남우는 안정을 되찾아가는 듯 보였다. 얼마 안 가 저를 걱정해 준 답례의 의미로 에녹에게 미소를 보냈다.











 같은 해, 새하얀 첫눈이 뒷동산을 덮은 즈음부터 수아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로부터 수아가 수능을 망쳤다는 둥, 그게 아니라 사실은 유학하러 갔다는 둥 에녹은 여러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수능이 무엇인지 유학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한번은 숙덕이는 어른들의 말을 엿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꾸만 반복되는 자살이라는 단어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린 에녹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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