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퇴
그 사이 나는 두 번의 사업(‘사업’이라 부르기가 민망하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에 도전했다.
난 오랫동안 ‘내 것’을 갖는 것을 갈망해 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것을 갖는다는 건 내 브랜드를 만드는 일 같았다. 당시 나는 성공한 스몰 브랜드의 대표들을 롤 모델로 삼고, 그들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수 년치 인스타 피드를 거슬러 올라가 탐독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고심 끝에 정한 첫 사업 아이템은 바로 레깅스를 자체 제작하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며 여러 브랜드의 레깅스를 직접 입어보면서, 개선하고 싶은 점들이 있었고 시장의 빈틈이 눈에 들어왔다. 레깅스 시장은 아직 성장할 수 있는 룸이 충분해 보였다. 나는 한껏 들떴다.
직접 시장을 다니며 발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실전에 뛰어들었다. 상품 제작의 가장 첫 순서는 원단 시장에 가 ‘스와치’라 불리는 원단 샘플 묶음들을 모아 오는 일이다. 문제는 사장님들 입장에선 그것도 다 돈이라, 풋내기한테는 스와치조차 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월급쟁이로 살 때는 어디 가서 무시당할 일은 없었는데, 직급도 명함도 떼고 동대문 시장에 간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에 불과했다. 수십 년 장사를 해온 사장님들 눈에는, 내 걸음걸이만 봐도 어리바리한 티가 났을 것이다.
사장님들의 우호적이지 않은 기운을 감지한 뒤, 나는 초짜 티를 조금이나마 벗어보기 위해 주변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일주일간의 집중적인 관찰 끝에, 나는 더 이상 쭈뼛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장님, 스와치 하나만 받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다소 뚱한 표정을 지으며 준비해 간 가방에 스와치를 척척 주워 담았다. 그러다 사장님들이 ‘어디서 왔어요?’ 라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물어오면, 몇 번이고 연습해 본 대로 시크하게 브랜드 이름을 댔다.
세 번 정도 샘플 수정을 거치고 나자, 드디어 직접 입고 테스트를 해 볼 만한 퀄리티가 나왔다.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 입어본 레깅스 중에 가장 답답하지 않고 편하다고, 내가 말한 가격에 실제로 판매가 된다면 무조건 사겠다고들 했다. 물론 내 친구들이니 객관성이 다소 떨어졌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꽤 괜찮은 반응이었다.
다음 문제는 컬러였다. 시중에 나와있는 컬러들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국내 브랜드의 제품들을 보면서 ‘아니 왜 컬러를 이렇게밖에 못 뽑지? 해외 유명 브랜드처럼 예쁜 컬러는 왜 못 만드는 걸까?’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컬러를 새로 뽑으려면, 최소 수백 장 단위로는 염색을 해야 마진 구조가 맞는데 갓 시작한 브랜드가 그런 수량을 감당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기존에 생산되어 있는 원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는 게 없어도 마이너스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염색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염색 공장까지 수소문해 염색 의뢰를 넣고 기다리던 중, 코로나가 급속도로 본격화되면서 동대문 시장은 전면 폐쇄되었다. 그동안은 마스크를 두 겹으로 겹쳐 쓰고 입었던 옷은 전부 세탁하며 버텨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결국 아쉬움을 가득 안고 일을 중단했다.
몇 달만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코로나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