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Dear moon, my moon
가까워지지 않아
잰걸음으로 따라가도 닿지 않는 달처럼”
드라마 나의 아저씨 첫 화에서, 지안이 밀린 병원비를 낼 수 없어 누워 계신 할머니를 침대째 끌고 달아날 때 흘러나왔던 OST ‘Dear Moon’의 가사이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밤 아파트 단지를 혼자 걸으면서 이 노래를 조용히 읊조리며 걷곤 했다. 멈춰 서서 어스름한 달빛을 멍하니 쳐다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픈 곳보다 아프지 않은 곳을 꼽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여기저기 온몸이 고장 나버린 엄마. 온 힘을 다해 아빠를 미워하느라 제정신이 아닌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슬픔과 분노와 연민이 뒤섞여 미쳐버릴 것 같지만, 외면은 하지 못하는 나.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해결이 될까? 정말 모든 게 깨끗하게 끝나버릴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아픈 영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죽지 않고 사는 유일한 이유는 영웅이를 두고 갈 수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게임의 ‘그만하시겠습니까’ 메뉴에서 ‘YES’를 누르면 바로 종료되는 것처럼, 만약 내 인생도 버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면 난 기꺼이 그 버튼을 누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엄마는 온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아빠를 저주하는 데만 썼다. 엄마는 증오와 분노로 집 안의 모든 공기 입자를 채워버렸고, 난 숨통이 막혔다.
엄마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자기 몸을 혹사해 가며 집안일을 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김치를 담그고, 우리 집 김치가 남아있으면 지방에 사는 친구들 몫까지 담가 택배로 보내주었다. 다음 날엔 항아리만 한 유리병에 1년 치 매실을 담가 쟁였고, 또 그다음 날엔 온갖 과일을 사 와 무쇠 냄비에 들이붓고 몇 시간을 휘저어가며 잼을 만들었다. 난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그럼 종일 누워만 있으라는 거냐고 되받아쳤다. 우리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악을 쓰며 싸웠다.
나는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고, 엄마의 건강이 더 악화되는 걸 조금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엄마가 혼자서도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믿었기에 말을 얹었다.
남들 앞에선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오직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정작 내 말은 아무것도 듣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고, 가증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안정을 취해도 나아질까 말까 한 몸을 그리 혹사했으니 결국 몸이 망가지는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어느 날 아침 엄마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나를 불렀다. 목 디스크가 터져 고개조차 가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병원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의사 앞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른이 엉엉 울자 젊은 의사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의사는 마약 성분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는데, 일반 약국에서는 취급하지 않아 몇 군데의 약국에 전화를 돌린 끝에 겨우 약을 받아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일 좀 그만하라고 했잖아. 그렇게 고집부리더니 결국 이렇게 됐잖아!!”
똑바로 앉지도 못해 조수석을 완전히 젖혀 눕다시피 한 엄마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흐느껴 울기만 했다. 난 가슴에서 천불이 올라와 목구멍까지 뜨거웠다.
집에 돌아와 엄마를 안방 침대에 눕히고, 처방받아온 진통제를 엄마 입에 털어 넣어주었다. 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졌다. 방문을 닫고 그대로 주저앉아 목놓아 악을 내지르며 울었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엉망진창일 수 있지? 진짜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날, 난 완전히 무너졌다.
며칠 뒤 상태가 조금 호전되자 엄마는 바로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와의 갈등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그때의 우리는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둘 다 날이 시퍼렇게 서서, 날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서로를 할퀴었다.
“제발 그만 좀 해. 마약까지 타다 먹으면서 누워있는 엄마 보면 난 어떨 것 같아? 어떻게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해? 아빠랑은 이제 다 끝난 거잖아. 끝났으면 그만해야 하는 거잖아. 어떻게 평생을 날 이렇게 힘들게 해?”
그러자 엄마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가 뭐가 그렇게 힘들었다 그래? 네가 무슨 피해를 입은 게 있어? 우리는 너 힘들게 한 건 없어”
그 말만은 정말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 귀를 쫑긋 세우고는, 방문 밖 둘의 언성이 높아지기라도 하면 두려움에 떨다가 겨우 잠들곤 했던 나에게,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아주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였다. 내가 둘 때문에 힘들지 않았던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난 그 말에 눈이 뒤집혀 이성을 잃고 목놓아 울부짖었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엄마에 대한 아주 조금의 연민마저 마음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 해 겨울을 앞두고 엄마와 아빠는 마침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엄마의 너무도 당연한 듯 당당한 요청에 의해) 손수 엄마의 이혼 신청서 작성을 돕고 필요한 서류를 챙겨주었으며, 가정법원에 도착해 몇 층으로 가야 하는지까지 일러주어야 했다. 나는 내가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어 그야말로 기분이 ‘더러웠다’.
며칠 뒤 아빠는 집에 와 엄마가 싸놓은 짐만 가지고 나갔다. 60평짜리 집에 엄마와 나, 그리고 영웅이만 덩그러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