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행복
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얼마짜리든 간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면되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고 싶은 일을 돈 때문에 망설여 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작은 인쇄소를 운영했는데 관공서의 도면이나 인쇄물을 출력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디지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모든 문서를 실물로 인쇄하던 시절, 가게는 그야말로 성업이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손이 야무졌던 아빠는 뛰어난 마감 수준과 칼 같은 납기일 준수를 자랑했고, 부지런하고 싹싹한 엄마는 손님들에게 간식거리며 믹스 커피를 챙겨주며 배달까지 자청했다. 그 덕에 이 동네 인쇄는 다 저 집에서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금 등록기 서랍이 늘 넘쳐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하고 올 정도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벽까지 기계를 돌렸고, 아빠는 매일 퇴근할 때마다 가죽 파우치 백에 하루동안 수금한 현금 다발을 쓸어 담아왔다.
나는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며, 열 개 가까운 사교육을 받았다. 모두 개인 레슨이거나 최대 세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레슨이었다. 국영수는 물론이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미술에 수영까지 선생님을 붙여 개인 레슨을 받았다. 중학교는 캐나다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녔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돈을 사교육에 썼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엄마와의 주된 하루 일과 중 하나는 백화점 나들이였다. 발레 파킹을 맡기고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종 화장품 매장의 매니저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엄마를 반겼다. 우리는 매장에 들어가 매니저가 내주는 차를 마시고, 별 의미 없는 농담도 주고받고, 신제품에 대한 설명도 듣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쿨하게 결제를 했다. 그렇게 전 층을 돌며 원 없이 쇼핑을 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VIP라운지에 가서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쉬는 것이 우리의 정해진 코스였다.
그런데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출력업은 급격히 사양산업으로 저물기 시작했다. 일감 자체가 급감했고, 그마저도 기업화된 대규모 출력소들의 독차지가 되었다. 장사는 예전 같지 않은지 이미 오래였다. 그래도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유지만이라도 했다면 10년 정도는 더 그럭저럭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아빠는 이참에 더 ‘폼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난데없이 캠핑장에 꽂혀버린 것이었다. 엄마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는 거액의 투자금을 들여 캠핑장을 차렸다. 수 천 평의 땅을 사, 나무 한 그루에 많게는 천만 원씩을 들여 빈 땅에 채워 넣었다.
문제는 그가 서비스 정신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캠핑장은 결코 그에게 맞는 업종이 아니었다. 인쇄소의 성업도 엄마의 살가운 손님 관리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캠핑장은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은 것에 비해 수익은 형편없었고, 그때부터 우리 집 가세는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간 버는 족족 썼기 때문에 모아둔 재산도 거의 없었다. 허구한 날 최고급 레스토랑에 가고, 철마다 해외여행을 다녔으며, 2년에 한 번씩은 신상 모델로 차를 바꿨으니 남아난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맨바닥에서 시작해 자수성가를 이뤄냈지만, 돈을 지키는 법은 몰랐다. 그 누구도 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리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돈 무서운 것 모르고 자란 나와, 어딜 가든 극진한 사모님 대접에 취해 있던 엄마, 그리고 최고급 차를 몰며 매주 골프 라운딩을 다니던 아빠는 순식간에 텅 빈 껍데기가 되어버렸다.
원래도 나빴던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더 최악을 향해 치닫은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몇 년 뒤, 엄마가 유방암에 걸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없던 문제도 생긴다는 걸 난 그때 알았다.
나에게 닥친 이 모든 불행들은-기울어버린 가세, 부모의 이혼, 엄마의 암 투병까지- 어느 하나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책임져야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난 또 맞서 싸우고, 내가 이겨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 말고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해 큰돈을 벌어, 엉망이 되어버린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매일 되뇌었다.
그렇게 난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