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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Mar 25. 2020

냉장고 소리

깊은 밤, 그 울적함의 기원


 문득 울적해졌다. 우울함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담백함이 조금은 남아있는 감정이다. 한밤 중이라는 시간이 주는 서정성 때문일까. 불면이 겹친 몸의 피로에서 오는 고단함이 이유일까. 울적함의 기원을 알 길이 없다. 이유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책상엔 미처 다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고, 새해 운동 결심으로 구입한 실내용 자전거에는 먼지가 쌓여 있다. 통장 잔고는 0으로 수렴하고 있으며, 월급이 오르는 속도 역시 0에 가깝다. 어쩌다 큰 맘먹고 찾아간 맛집의 저녁 메뉴는 형편없었고, 형편없는 메뉴가 남긴 입안의 잡내를 없애려 마셨던 커피는 너무 오래 볶았는지 쓴맛 밖에 나지 않았다. 


 파편처럼 흩어져 생활의 곳곳에 박힌 먼지 같은 울적함의 이유와 흔적들. 그것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끝에 냉장고 소리가 들려왔다. 1년 전에 산 250리터짜리 중형 냉장고가 내는 모터 소리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애초에 저가 중국산 제품을 산 것이 화근이었다. 국내 S전자나 L전자 제품을 사고 싶었지만 값이 두 배 가까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즘은 중국산 보급형 제품들도 괜찮다는 구입 후기도 읽었던 것 같다. 고요한 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는 그 고요한 밤이 남긴 공기의 여백을 꾸역꾸역 채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세계를 패닉 상태에 빠뜨린 코로나 바이러스도 중국산이다. 중국은 아니라고 하지만 최소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이 중국이라 확신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집에 머문다. 10분에 한 번씩 냉장고의 모터가 작동한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오십 번에 걸쳐 그 불쾌한 소리가 나를 찌른다. 불쾌한 소리는 “불쾌한 기억을 연상시킨다.” 불쾌한 기억은 순서가 없다. 어제의 불쾌함과 십 년 전의 불쾌함은 그 무게가 거의 같다. 다시 냉장고의 모터가 켜진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 탓인지, 설정해 놓은 냉장 온도가 자꾸 올라가는지, 냉장고가 돌아가는 횟수도 더 잦아진 것 같다. 


 문득 화가 났다. 울적함은 사라지고 냉장고 소음은 온갖 종류들의 감정들을 잡아먹는다. 울적함, 고요함, 그리움, 외로움, 한적함, 편안함. 모든 것을 잡아먹어 힘이 났는지 더 힘차게 돌아가는 냉장고. 조금만 더 내 감정들을 잡아먹었다가는 탱크가 될지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이 가난의 증거를 인멸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가난이 슬픈 건 가난이 잉태하는 것들은 대부분 가난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건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결국 냉장고의 플러그를 뽑았다. 잠시라도 불쾌한 소음을 벗어나고 싶었다. 잠시라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밤은 다시 고요해졌고 마음은 다시 울적해졌다. 분노와 불쾌함에서 벗어난 울적함이라... 그것이 바람직한 감정의 진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의 퇴화가 아님은 분명하다. 분노와 울적함, 그 사이의 공간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어떤 달달한 느낌이었는데 대충 말하자면 ‘행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노 - 울적함 = 행복감. 가난한 자에게도 가끔은 이렇게 밑바닥과 약간 높은 밑바닥 사이에서 이런 달달함이 스며 나온다. 


 한 시간 정도 후에는 다시 냉장고의 플러그를 꼽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동고의 얼음이 녹아 흐를 것이며, 신김치는 아예 쉰 김치가 되어 버릴 것이다. 플러그를 꼽으면 가난은 다시 돌아와 불쾌한 소음을 낼 것이다. 문득 우울해졌다. 울적함이 음의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잠을 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함은 금세 분노로 진화할 것이다. 가난한 자는 밤에 잠을 자야 한다. 

     


 윗글은 영화잡지 <씨네21> 1248호, 54쪽에 실렸던, “나는 영화를 어떻게 겪어왔는가”란 제목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글의 구성과 표현을 모방하여 작성한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잡지의 글에서 글쓴이는 냉장고 소리에 얽힌 불쾌함을 이렇게 기가 막히게 도출해 냅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 문득 울적해졌다. 울적해지긴 했는데 왜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아니, 반대로 이유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책상 위에 쌓아둔 업무가 내내 마음에 걸렸고, 문득 생각난 통장 잔고가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한 번쯤 도전해야겠다 싶어 찾아간 단골 식당의 새 메뉴가 만족스럽지 않은 게 이유일 수도 있다.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시 말해 이유는 이유가 아니다. 우리는 대개 원인이 있어 결과가 발생한다고 믿지만 실은 대부분의 사고처럼 닥쳐온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이유를 찾아가는 쪽에 가깝다. 
 파편처럼 흩뿌려진 이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 끝에 냉장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따라 유난히 빈 냉장고 소리가 거슬렸나 보다. 고요한 밤, 빈방을 가득 메우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는 불쾌한 기억을 연상시킨다....     


한밤 중 찾아오는 울적함의 기원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울적함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그 어느 것도 오히려 이유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울적함을 날려버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냉장고의 플러그를 뽑으면 됩니다. 그리고 잠을 자면 됩니다. 때로는 적당한 울적함의 잔향을 음미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습니다. 저는 오늘 밤 이렇게 글을 끄적이며 울적함을 즐길까 합니다. 그리고 곧 잠을 청할 겁니다. 울적함을 너무 많이 마시면 감정의 설사가 시작될지 모릅니다. 굿나잇 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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