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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pr 11. 2020

서울에 산다는 것

서울 스탬프 러닝 챌린지

서울이란 곳에 산지 벌써 10년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서울살이는 어떻게 지금도 버겁기만 했다. 좀 알만하다 싶으면 이사를 준비해야 했고 기숙사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전세로 집세를 삭감하다 보니 사는 곳은 계속해서 중심부에서 멀어져만 갔다. 아침마다 서울에서 제일 길다는 8호선-2호선 환승구간을 종종걸음으로 건너갈 때면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닿을 듯 말듯한 거리감 때문인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서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길래 뭐가 그렇게 대단하길래 어릴 때부터 엄마들이 인서울을 그렇게 표어처럼 강조해왔는지, 모로 가도 서울로 가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나는 서울과 길고 지난한 썸을 타고 있는지도 몰랐다.




작년 9월에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했던 서울 스탬프 러닝 챌린지는 서울을 알아가기에 이보다 더 좋은 루트가 없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경험이 됐다.



#서울스탬프러닝챌린지
서울을 12개 구로 나눠서 6주 동안 달린다. 달린 후에는 보상으로 서울 스탬프 마그넷을 받을 수 있다. 12개의 서울 스탬프 마그넷은 각각의 구 모양을 본떠서 나무로 만든 자석이다. 12개 구를 모두 달려 수령한 자석을 연결하면 서울 모양의 지도가 완성된다.     


이 챌린지는 참여자 전원이 호스트이자 게스트가 됐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 위주로 각 구의 호스트가 정해졌는데 호스트가 되면 담당 구역의 자석을 챌린지 전체 인원만큼 미리 받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참여방식은 아래와 같다.


1. 호스트가 본인이 맡은 구의 러닝 루트를 계획하고 인원을 모집한다.

2. 모집된 게스트들과 담당 구를 달리고 난 뒤 미리 받은 자석을 나눠준다.

3. 마찬가지로 다른 날엔 본인이 맡지 않은 구를 뛰고 게스트로서 자석을 받는다.

*단, 피치 못한 사정으로 각 구의 호스트가 러닝을 주최하지 못할 때는 뛰고 싶은 사람이 허락을 구한 후 대리 호스트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챌린지 기간 동안 서대문 마포 은평구의 호스트였다. 이 곳은 대학 때부터 내리 9년을 산 동네라 그런지 유난히 애착 가는 곳이 많았다. 러닝 코스 짜는 것부터 사전 답사, 세 번의 호스트 주최 러닝까지 꽤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함께 마포구 호스트를 담당하고 있는 친구들과 너무 자주 만나서 토토마(토요일 토요일은 마포를 달린다)라는 소규모 프로젝트 러닝 크루를 결성하기까지에 이를 정도였다.


이 같은 결집 현상은  다른 구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났는데 종로구 호스트인 친구는  GRC(경복궁 러닝 크루)라고 게스트 맞춤형 1인 러닝 크루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본디 러닝 크루는 동네 기반으로 조성되고 결집됐으니까. JSRC(잠실 러닝 크루), SLRC(석촌호수 러닝 크루) 등 서울의 중대형 러닝 크루의 시작도 대부분 그러했다. 아무튼 챌린지 덕분에 본인이 사는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되고, 잠시나마 장(長)이 되어 리더십을 발휘해 볼 기회가 생긴다는 건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됐음이 분명했다.

 


챌린지의 매력은 호스트일 때뿐만 아니라 게스트일 때도 빛을 발했다. 각 구당 보통 서너 명의 인원이 호스트로 활동했는데 모두가 직장인이라 웬만해서는 평일 저녁 달리기가 힘들었다. 주말에는 다른 구와의 날짜 중복으로 달리기가 차일피일 미뤄졌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챌린지 마감일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이때부터 다급한 마음에 너 나할 것 없이 호스트 대리인이 되겠다 자청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강남구 열게."

"다음 주 화요일 마포구 뛸 사람?"

"이번 주 금요일은 양천구 내가 연다. 필요한 사람 자석 받으러 와."


마그넷을 구하기 위해 선뜻 손 드는 게스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종국에 가서는 거의 매일 같이 뛰게 됐다. 대개 오늘 동대문구를 가면 내일은 강남구를 가고 모레는 강서구를 가는 식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벼락치기의 달인이었던 나 또한 마지막 일주일을 내리 달렸다. 월요일 관악 동작구, 수요일 종로 성북구, 목요일 용산 중구, 금요일 동대문 중랑구, 토요일 오전 영등포구, 토요일 오후 노원구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손바닥 만한 나무 조각에 아이콘 하나 새겨진 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뛰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하면 할수록 마약 같이 끊을 수가 없었다. 신상 운동화가 출시되면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따로 살 수도 없고 획득할 수 있는 기간 또한 정해져 있으니 마그넷은 딱, 한정판 유니크 아이템과 비슷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 있는 단톡 방에서 매일 같이 챌린지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해보면 마그넷을 위한 달리기가 더욱 특별해질 수밖에 없었다. 희소가치가 있는 만큼 어떻게든 서울 이곳저곳을 열심히 달려야 했다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다 보니 다리는 도통 남아나질 않았다. 자석을 다 완성하고 정형외과에 갔더니 골막염 진단을 받을 정도였다. 덕분에 보름 동안 걷는 것 빼고는 아무 운동도 하지 못했다. 매일 하던 운동을 못하게 되니 답답할 때가 많았지만 딱히 후회는 없었다. 마라톤 대회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달리기에 몰입해본 게 언제였는지 영 가물가물했다. 잘 때 침대 머리맡에 놓인 서울 모양 지도를 보고 있으면 뿌듯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넌더리가 날 정도로 서울을 달렸다. 그리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울 지도가 완성됐다. 이건 직접 발로 뛰어가며 만든 나만의 지도였다. 이 지도에 담긴 6주간의 땀, 추억만으로도 챌린지는 충분히 가치 있었다.



서울에 계속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20대 후반부터 친구들은 자기가 살 곳을 서서히 찾아갔다. 어떤 친구들은 지방 발령으로 서울을 벗어났고, 어떤 친구들은 외노자로서 한국을 떠나갔다.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과 연락하다 보면 너 아직 서울 살아?라는 말이 으레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면 나는 꽤 오래 서울에 살고 있었다. 왜일까. 가족도 연고도 없는 이곳 서울이 뭐가 좋다고 계속 뿌리내리고 있는 걸까.


고민하다 보면 6년 전, 처음 자취방을 구하고 전입신고하던 날이 떠올랐다. 동사무소를 나오던 길, 주민등록상 거주지 주소가 서울특별시로 바뀐 것뿐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이게 뭐라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강에 가서 맥주라도 뜯으면 좋겠네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은 집으로 향했다. 미처 풀지 못한 이삿짐을 정리하고 5평짜리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바보처럼 실실 웃음이 났다. 눈을 감으면 한강의 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연중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그래서 그 불빛 때문에라도 좀체 희망을 놓을 수 없는 도시, 이 곳 서울에 드디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히 살아가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앞길이 마냥 꽃길인 줄만 알았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방 한 칸, 한 칸 반을 전전하며 옮겨 다닐진 몰랐으니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서울에 살고 있다. 이 넓은 서울 땅에 내 집 마련이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로 같지만 골목골목 새겨진 추억들과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아직은 서울이 좋다고, 좀 더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또다시 서울이란 도시와 길고 지난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꽤 열심히 착하게 살고 있는데, 언젠가는 서울이 날 받아주질 않을까 그렇게 그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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