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묘 Oct 05. 2022

돌 거인들이 싸우다 지쳐 잠든 땅

인도 함피

한때 위대했던 그 도시들은 이제는 작아졌을 것이며, 
내 시대에 위대했던 사람들은 이전에는 하잘 것 없었으리라...
인간의 행운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 헤로도토스


바이크를 빌렸다. 

퉁가바드라 강 너머 아네군디 마을을 달렸다. 

운전이 서툴렀지만, 오후에는 실력이 좀 나아졌다. 

길 양 옆에 늘어선 나무들. 

흩어져 있는 돌들, 염소 치는 사람들, 스치는 집들, 작은 마을. 그리고...

아~ 바이크만의 속도감. 기분이 최고였다.

쪼리가 망가졌다.  

맨발로 바이크를 타고 다니다가 신발 가게를 발견. 

가격을 깎아 5.000원에 쪼리를 샀다. 

그런데 세 시간 만에 쪼리가 뜯어졌다. 

바이크를 타며 발을 끌었기 때문인가? 

난 맨발로 다시 가게에 갔다. 

아저씨에게 뜯어진 신발을 보이며 바꾸겠다고 했다. 

단호하게. 안 바꾸어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고.

아저씨는 과도한 몸짓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신발을 고르고 신어 볼 동안 아저씨는 마지못해 서 있었다. 

슬리퍼로 바꿔 가게를 나서는데, 아저씨가 너무 환하게 웃는 것이다.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5.000원이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가격이었구나.


암벽 등반을 신청했다. 

태국 크라비에서 했을 때와는 다르게 샵에서 좋은 장비를 챙기지 않는다. 

강사들이 간이침대 메트 몇 개만 들고 메고 갔다. 

가격이 싸서 그러나? 떨어져 다치면 어쩌려고. 

따라가 보니 벼랑을 오르는 게 아니었다. 

3미터에서 10미터 정도의 동그랗거나 길쭉한 돌덩이를 오르는 것이었다. 

거친 바닷물을 밑에 두고 벼랑을 올라 본 나로서는 돌덩이가 시시해 보였다. 

3미터 둥근돌에 올랐다. 

다음 돌부터 조금씩 크고 높아졌는데.

나는 두 번째 돌부터 오르지 못했다. 8명 중 나만.

돌이 단단해 손가락 넣을 틈이 없었다. 

구르는 힘으로 올라야 하는데, 첫 돌을 손가락 힘으로만 올랐으니. 

그때 힘이 다 빠져버렸다. 

가이드뿐만 아니라 초보 등반가들까지 나를 도와주려 애썼다. 

하지만 난 팔이 후들거려 들어 올리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크라비에서는 제법 높이 올랐는데 왜 이렇게 못하는 것일까?

강사가 춤을 추듯 아름답게 오르는 시범을 보였다.

돌아와 비디오를 보여주며, 

바닷가 돌은 구멍이 많아 오르기 쉽다고 귀띔했다.

다음날까지 우울했다.

참 더디다. 바이크도 별로. 암벽 등반도 나만 못하고. 길도 맨날 헤매고. 

그럼에도 부족한 내가 사는 방법. 

천천히 하나씩 하기!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해내는 걸 기뻐할 것!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 

느긋한 오후의 햇빛 속에서 함피를 내려다보았다. 

돌과 바위들이 발개지고 있었다. 

번성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정돈된 길. 큰 건물이었던 자리. 유유히 흐르는 강. 

저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돌들, 돌덩이들, 또 바위들! 

돌 거인들이 싸우다 부서져 지쳐 잠든 땅. 

함피는 참 특별했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이상하기도 했고. 

원숭이 한 마리가 콜라를 훔쳐갔다. 

뚜껑을 열 줄 안다.

돌려받으려고 하자 원숭이 때가 몰려들었다. 

조금 겁이 나기 시작. 서둘러 하산했다. 

이전 08화 요금을 싸게 불러 혹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