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현 조성민 부부의 이혼 사유
어쩌다 우리이혼했어요2를 시청하게 되었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다가 집중해서 보게 된 건 최근 방영된 배우 장가현 부부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시어머니를 20년간 모신 데다 와이프에게 대리 효도를 바란 것이 그들의 이혼 사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둘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이혼한 거다.
무슨 말을 해도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어서, 그게 쌓이다 쌓여 곪아 터져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이혼한 거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고?
조성민 씨가 소름 끼칠 만큼 내 전남편과 닮았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고문관 스타일에 심지어 자기 고집이 있어 벽창호인 점부터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인 것까지, 내 전남편과 도플갱어 수준이었다.
덕분에 회차를 시청하는 내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울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까지 벌개지며 울고 소리지르는 장가현의 심리 상태를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나도 그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려 노력했었고 그 과정에서 크게 다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인생에 한 번이라도 소위 완전체라 불리는 이들은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거다.
그들과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대화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며 결국 내가 비정상인 건지 스스로 헷갈릴 지경에 다다르고 나면 소위 현타가 오면서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어차피 이해도 공감도 못할 돌덩이같은 사람한테 더 이야기해서 뭐하나 싶어 그냥 입을 다무는 거다.
그렇게 포기와 체념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공황장애가 오거나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는 등 몸이 먼저 무너지면서 알게 된다.
아 나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겠구나.
남들이 보기에 나와 전남편은 환상의 짝꿍이었다.
연애 기간부터 결혼 생활 중에도 우리는 생활 패턴이나 취미까지 똑같은 알콩달콩 커플이었으니까.
간혹 내가 웃으며 이 사람과는 말이 안통한다고, 로봇이랑 사는것 같다고 말해도 다들 그게 농담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웃고 넘겼다.
그만큼 나는 성실하고 충실하게 아내의 자리에서 내 역할을 수행해 냈고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고 눈치가 없는 전남편의 부족한 점을 티나지 않게 채우느라 바빴다.
네가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는 너네 어머니가 도대체 왜 아들을 사회화도 시키지 않고 결혼시킨 거냐고 울부짖으며 멍들 때까지 가슴을 치던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제 그의 사회화는 내몫이구나 체념하고 받아들인 이후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그렇게 남들과 그가 느끼기에 평탄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5년째 이어지던 어느 날,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나는 공황으로 갑작스레 쓰러졌다.
그러고서 아무 이유 없이 한 달 새 살이 7키로나 빠지고 한 번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꿀잠을 자던 내가 하룻밤에도 서너 번씩 깨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 거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전남편도 조성민 씨도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좀 모자라서 그렇지 착한 축에 들며 부인에 대한 마음 역시 진심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무지는 순수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죄다.
몰라서 그랬다, 나는 원래 그런게 안되는 사람이다 라는 변명이,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뚱하고 애잔한 멍한 표정이 나를 가장 속터지게 했다.
다그치면 칠수록 나만 악인이 되는 듯한 기분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혼내는 듯한 억울한 죄책감이 나를 옭아매고 또 무너지게 했다.
그들은 애초에 혼자 살았어야 하는 종족이다.
이혼서류를 접수하던 날 전남편이 말했다.
자신은 연애는 다시 해도 결혼은 안할 거라고.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은 행복했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자신이 상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고.
웬일로 그런 깨달음을 얻었는지 놀랍기도 했고 그만큼 이혼이라는 사건이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겠다는 생각에 일견 짠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사랑했고 정을 나누며 살았던 사람인지라 막상 관계를 정리하는 순간이 오니 힘들었던 기억은 흐려지고 좋았던 순간과 고마웠던 일들이 떠오르며 애틋해지기까지 했다.
부부로는 더 이상 연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지만 어쩌면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미쳤지.
그로부터 얼마 후 가전, 가구를 나누어 갖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소통 불가의 답답함에 가슴을 쳐야 했고, 전동 드릴로도 뚫리지 않는 콘크리트 벽을 만난 기분에 다시금 마주하고 나서야 내가 왜 이 사람과 이혼했는지를 상기할 수 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나는 장가현 씨처럼 18년을 참다 홧병나기 전에 5년으로 결론을 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혼을 준비하고 진행하던 괴로운 시간에 비해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이제는 그가 내 옆자리가 아닌 곳에서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기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