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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Nov 20. 2021

반숙 계란후라이의 위로

내 인생은 올해 초부터 내리막길이었다.

짧지 않은 삶에서 처음으로 겪는 실패들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개가 한꺼번에 몰아 닥쳤다.

자기 전에는 매일 밤 내일 아침 눈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야속하게도 어김 없이 찾아오는 아침엔 매번 절망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행복과 웃음을 가장하며 속이 시커멓게 멍들어 가는 나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아무런 예고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껏 그저 평탄하고 안온했던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쏟아지는 불행에 나는 속절없이 두들겨 맞았고 어떻게 해야 일어설 수 있을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고맙게도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지만 가장 사랑했던 존재들이 나를 할퀴고 물어뜯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고 그보다 더 심한 흉터 자국을 마음에 그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죽었어야 했다.

미친 사람처럼 여기 저기 불행과 불운의 흔적을 남기고 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치느니 조용히 혼자 없어지는 것이 타당했다.

그러나 나약하고 비겁한 나는 자위와 절망으로 무장한 채 꾸역꾸역 비참한 하루를 살아 냈고 오늘도 여전히 눈치없이 숨쉬고 있다.


따스한   술에 뱃속까지 뜨끈해지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잘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 넉넉히 기름을 두르고 신선한 계란을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탁, 깨면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흰자의 테두리가 프릴처럼 갈색으로 주름지고 노른자가 알맞게 반숙으로 익었을 때 소금 약간과 후추를 뿌린 뒤 뒤집개로 조심히 들어 내어 접시에 담는다.


포크로 노른자를 톡 터뜨려 한 입 크게 떠넣고 우물거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신선하고 부드러운 생명의 기운이, 고소한 기름 냄새가 너무 따뜻했다.

모든 것이 망하고 실패한 깊은 절망 속에서도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었고 그게 또 심지어 맛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래도 여전히 가끔은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다.

언젠가 오늘로 삶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보다 따끈한 반숙 계란후라이를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길 바라며 그래도 또 하루를 기어이 살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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