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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Nov 22. 2021

영혼을 위한 갈비탕

어릴 적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센세이셔널한 붐을 일으킨 때가 있었다.

당시 겨우 학생이었던 주제에 영혼을 다치면 얼마나 다쳤다고 그 책에 몰두해 몇날 몇일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궁금했다. 닭고기 수프라는 음식이 정말 이리도 따뜻하고 효과적인 치유제인지, 우리네 닭죽이나 닭곰탕과는 아예 다른 음식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결혼 초 나는 자주 아팠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아팠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아픈지도 모르고 혼자 끙끙 앓았었다.

열이 39도를 넘나들고 목구멍은 까슬하고  몸이 드려 맞은듯 아팠지만 병원을 가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문득 어릴 적 읽었던 책이 생각났고 나는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몸뚱이를 일으켜 힘겹게 당근이며 감자를 썰고 닭고기를 손질해 생크림을 넣은 치킨 스튜를 만들었다.


맛은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자주 앓았다.

 힘듦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듯 모를듯 러나 차마 직면할 용기도 헤쳐나갈 자신도 없었기에 혼자 아프길 택했다.


그리고 지금.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아프다.

스스로가 구제할  없을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다는  너무  알고 있다.

 비참한 삶에 마지막 동앗줄이라 생각했던 존재도 결국 나를 이용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후에는  이상  생에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한 번 시도해 보았다.

집 앞 자주 무심히 지나치던 갈비탕집.

물에 빠진 고기를 못 먹는다는 이유로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갈비탕에 소주를 곁들여 몇 끼를 때웠다.

효과는 놀라웠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따위 코쟁이 서양인들이나 쳐먹으라지.

나같은 한국인한테는 갈비탕에 소주가 진리였다.

매일 매순간 매분 매초 죽고싶은 마음이 뜨끈한 갈비탕에 소주 한 잔 먹고 나면 그래 될대로 되라지, 어떻게든 되라지 느긋하게 풀어진다.


나도 안다.

마치 마약처럼 이런 위안도 이 순간 뿐이라는 걸.

그래도 하루 종일 죽고 싶은 마음만으로 죽지 못해 사느니 하루에 두 시간 정도라도 뜨거운 갈비탕의 위로를 받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은가.

언젠간 이런 방식의 휘발성 위로에도 지칠 것이고 여러 상황을 겪으며 말도 안되게 작아진 나의 위가 이제 그만하라며 먹었던 걸 다 토해낼 순간이 오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는 이 값싼 위로에 의지할 밖에 도리가 없다.

이젠 정말 그 밖에 나를 위로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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