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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Dec 23. 2022

어머니의 기도

금수저니 흙수저니 수저론으로 떠들썩한 덕에 나는 어떤 수저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집은 그닥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어릴 적 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풍족하게 보냈다.

하고 싶은 것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할 수 있었고 각종 악기며 미술을 개인 과외 선생에게 배우는 것은 물론 속독이나 서예, 어린이합창, 시 낭송 같은 잡기도 모조리 섭렵했다.


아버지는 사업가보다는 학자가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머리가 좋은 만큼 수완이 따르지 못했고 이문을 남겨야 하는 장사치가 되기엔 지나치게 선하고 대쪽같았다.

가끔 생각한다.

한량 할아버지 덕분에 고생만 하신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으로 억지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는 대신 어딘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면 아빠는 조금 더 행복했을까?




차이나붐이 일기 전에 사업을 중국으로 확장할 좋은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소심한 탓에 고민만 하다 시기를 놓쳤고 마침 집안의 골칫덩이였던 작은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교도소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늘 그래왔듯 아버지는 가진 재산을 모조리 처분해 동생이 전과자가 되는 것을 막아 주었다.


당장의 생활 양상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부모님이 우리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는 사실과 어쩌면 나중에 부모님의 노후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믿는 구석이 사라진 삶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딸 둘 중 장녀로서 이제는 내가 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부담감과 대학생 때부터 알바를 했던 동생과 달리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고 부유하고 풍족한 어린 시절을 마음껏 누렸다는 부채감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 들거나 집에 돈을 보태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서서히 그리고 매우 교묘히 변해갔다.

이제껏 본능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던 내가 안전한 선택을 하기 시작한 거다.

학교나 직장, 심지어 애인을 고를 때에도 늘 실패하지 않을 만한, 그래서 최선이 아닌 선택만을 했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와 생각건대 그 때의 나에겐 실패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스스로를 억누르며 넘어지지 않을 길로만 조심스레 걸어오던 나는 지난 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안전했던 울타리가 부서지고 믿었던 이들이 등에 칼을 꽂았다.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듯 했다.

몸을 사리느라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나였기에 처음 겪는 고난에 속절없이 치였고 이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나를 지탱하고 일으킨 것은 어머니의 기도였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부터 마흔이 다 된 지금까지도 여름이나 겨울이나 시린 새벽에 일어나 예배당으로 향한 어머니의 발걸음이, 매일같이 눈물로 쌓은 기도의 제단이 죽음을 목전에 둔 나를 살렸다.

이 세상 그 어떤 재물과 영화도 당시의 나를 구할 수 없었을 거라 확신한다.

나는 몸도 마음도 그리고 정신과 영혼까지 처참히 망가졌었다.

밤이면 술에 취해 정처 없이 8차선 도로를 무단으로 왕복하며 제발 차에 치어 즉사하기를 바랐다.

감히 말하건대 그 때 내가 죽지 않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모두 수십 년을 변치 않고 기도로 양육하신 부모님 덕분이다.


결국 어머니의 기도는 내게 주신 가장 값진 상속분이었다.

그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하고 가치 있는 기도 덕분에 벼랑 끝에 섰던 내가 다시 생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생의 고난이 이걸로 모두 끝났다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결국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딛고 다시 일어설 것임을 믿는다.


아쉽게도 이 소중한 기도의 유산을 전할 후대가 없으니 이제 나는 무릎을 꿇고 이 세상 모든 어두운 곳의 약자와 아픔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어머니가 지금껏 내게 해 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p.s. 참고로 아버지도 늘 같이 기도하셨다. 그저 제목과 글의 뉘앙스 상 어머니의 기도가 더 어울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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