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드라이브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오늘 가는 곳은 레이크만야라 국립공원이다. 바로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 보이는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국립공원. 탄자니아에는 국립공원이 많이 있는 데 가는 곳마다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 가는 레이크만야라는 앞에 레이크 라는 단어가 들어가듯 큰 호수가 있는 곳이어서 하마를 비롯한 어제와 다른 환경의 동물들을 더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침 먹으러 가는 길도 예술이다. 해가 질 무렵에 느낀 감정과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식당으로 올라가는 감정은 또 달랐다. 아침도 뷔페식이었는데 계란요리는 따로 오믈렛이나 프라이로 주문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아프리카에 온다고 했을 때 다름 아닌 우리의 걱정은 '식사'였다. 블로그의 후기들 중 공통적으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한 번도 라면이나 맛다시 같은 제품을 챙길 정도였으니깐. 하지만 어제 석식에 이어 조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강한 녀석들임을 깨달았다.
너무 맛있다. 특히 이날 조식 음식 중 바나나 파운드케이크를 누텔라를 찍어먹는 순간, 요즘 말로 극락에 갔다 왔다. 오늘 새로운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 때문에 여유 있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서 로비에서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을 때, 프런트 직원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잠보잠보(Jambo), 어제 잘 잤어? 오늘은 어디가?"
"뽀아뽀아, 오늘은 레이크만야라로 가"
"오, 저기 보이는 호수 뒤가 레이크만야라인데 너희 오늘도 여기에 머무니깐 이따 사파리 끝나고 호수 쪽으로 한번 가봐. 동물들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그러면서 핸드폰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사진 속 그녀는 얼룩말과 함께 나란히 있었다. 마치 제주도 목장에서 말과 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은 그 모습이 너무 신비하고 웃겼다. 우리가 신기해하자 그녀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 근데 어두워질 때는 가면 안돼. 하마들이 올라올 때가 있어서 위험할 거야. 가끔 우리 수영장에도 하마가 올라온다니깐."
하마가 수영장까지 온다니 한국이었으면 얼토당토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고 비웃었을 텐데, 물론 그녀의 제스처와 말투로 농담인 것은 알았지만 여기서는 충분히 말이 되는 것 같았다.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가이드가 도착했다. 180cm가 넘는 큰 키, N의 얼굴만 한 팔뚝, 잔망스러운 발걸음과 웃음소리를 갖고 있는 '아미르'와의 첫 만남이었다.
"잠보잠보, 나는 아미르야. 오늘 레이크만야라부터 세렝게티까지 같이 갈 거야"
"뽀아뽀아 만나서 반가워!"
"오늘 너희 말고 1팀 더 있어서 그 팀 태우러 먼저 갈게"
어제 친구와 드라게 여유가 느껴지는 짬빠였다. 개인적으로 N과 나는 음식점이나 상점에 갔을 때, 회사로 치면 대리에서 과장 정도의 짬빠가 느껴지는 직원을 좋아한다. 적당한 열정과 그에 못지않는 권태로움, 그리고 전문성까지 갖춰진 사람. 이번 탄자니아 투어에서 만난 '아미르'는 딱 그 조건에 부합했다.
다른 캠프사이트에 도착해서 오늘 같이 동행하는 독일인 커플과 만났다. 누가 봐도 독일인인데 싶은 커플이었다. 여자분은 우리가 다음에 가는 잔지바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사파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어제 1차 사파리를 갔다 와서 나름 이 사파리차량의 꿀자리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인 꿀자리 순 1 > 2 > 3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자리인 아미르 뒷자리에 앉아서 이번 사파리를 즐겼다. 사파리의 좌석은 뒤로 넘기거나 당길 수 없기에 키가 큰 독일인 커플은 2번째 자리, 3번째 자리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오늘 가는 '레이캬비크 국립공원'은 원숭이 손을 닮은 식물이 많기에 '레이캬비크'라는 스와힐리어가 붙은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국립공원마다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공원에 입장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어제 갔던 공원은 건조하고 뜨거웠다면 이번 국립공원은 선선하고 시원했다.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엄청난 원숭이 떼. 어제의 원숭이와는 다르게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정말 야생의 원숭이었다. 우리의 물건을 훔치려고도 차 안에 들어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신기하게 생긴 자동차가 궁금했는지 올라타고 차의 안테나를 씹었다. 씹던 안테나를 돌리다가 다른 원숭이 엉덩이를 때려버리는 엄청 웃긴 관경을 봤다.
그리고 제일 신기한 경험! 동물도 혼자 즐길 수 있었다.
다른 원숭이 무리들을 구경하다가 맨 위에 위치한 원숭이 자신의 소중이를 만지는 것을 보았다. 잠깐 사람들끼리 떠들다가 다시 돌아봤을 때 그 원숭이의 소중이에서 정액이 분출되는 관경을 보았다. 모두 그 관경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원숭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우리를 쳐다보고, 그런 원숭이를 쳐다보면서 깔깔 웃었다.
지금까지 내가 티브이나 동물원에서 동일한 원숭이를 보면서 이제 저 원숭이는 내가 다 알지 생각했는데, 이런 관경을 보다니 정말 내가 자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였다. 아이러니하게 그 순간이 내가 아프리카에 잘 왔다고 생각이 든 첫 순간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적당한 그늘까지 완벽했다. 점심시간 전쯤 코끼리 한 무리가 우리 차 앞을 지나갔다. 시동을 끄고 아기 코끼리부터 지나가는 관경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코끼리 울음소리가 우리 옆에서 들렸다. 옆을 봤을 때는 엄마 코끼리가 정말 화가 났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 순간 아미르가 시동을 걸고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그 코끼리는 우리를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코끼리는 온순하고 귀여운 얼굴, 그리고 덤보라는 캐릭터, 어렸을 때부터 너무 익숙한 모습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프리카에서 위험한 동물 top 5 안에 든다. 실제 코끼리로 인해서 사고가 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그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잠깐 어른 코끼리와 눈을 마주쳤을 때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 조심해'라는 무언의 눈빛. 이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갑작스러운 짜릿한 이벤트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어제와 똑같이 뷔페식! 어제와 다르게 뿌려먹는 칠리소스가 있었다. Arusha에 있는 마트에서 살 수 있다는 칠리소스인데, 이거 맛있다. 맵고 짠 수준이 적절해서 곁들여 먹기 딱 좋았다. 이 소스로 인해 맛다시는 또 필요가 없었다.
오후가 되니 그늘이 조금씩 없어지고 햇빛이 쨍쨍했다. 그 사이에 버펄로, 가젤 등등 보았고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마도 멀리서 보았다. 동행하는 일행 남자분은 대머리였는데 오전까지는 살색이었던 머리가 점점 빨갛게 변했다.
'타코야끼 같다'
N에게 말했다. 깔깔 웃으며 N이 답했다.
'우리 지옥 가겠다'
일정이 마무리되고 일행과 같은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어제와 동일한 템보! 코끼리 숙소에 도착했다. 어제 못한 수영을 하러 수영장으로 바로 갔다. 어쩌면 하마가 있었을 수도 있는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했다. 수영장 앞에는 레이캬비크 호수가 보였고 그 멀리에는 얼룩말도 한 마리씩 보였다.
수영을 하고 있으니 어제 봤던 서커스 직원이 와서 물었다.
'오늘도 공연 볼래?'
'아니 오늘은 괜찮아'
대신 일행 무리에게 서커스 한번 보라고 대리 영업을 해줬다. 우리도 만족할 정도로 품질은 보장된 깐. 선베드에 누워서 그들의 쇼 노랫소리와 일몰 관경을 보았다. 천천히 해가 지는, 노란색이 붉은색이 되고, 붉은색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관경을 만끽했다.
해가 지니 배가 고팠다. 따로 간식이 없어서 사파리 기간 중 식사시간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오늘도 맛있게 나온 저녁을 잔뜩 떠먹었다. 오늘은 맥주도 한 병씩 시켜서 먹으면서 천천히 저녁을 즐겼다. 하나둘 다른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노랫소리가 들렸다.
퇴근송인가? 아직도 그 노래가 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직원들이 한 두 명 뛰어오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프런트부터 식당에 있던 주방장도 나와서 마치 그들의 하루 일과 끝을 축하하는듯한, 우리의 저녁을 축하하는 듯한 노래를 불러줬다. 모두 웃으며 너나 할 거 없이 치아가 가득 보이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노래를 마친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방으로 들어가며 별을 봤다. 식당 빛이 밝아서 별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본 것보다 넓게 광활하게 별이 보였다.
다음은 사파리의 꽃이라고 하는 킬리만자로로 떠나는 날이다. 킬리만자로까지 반나절이 걸리기에 짐을 싸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