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파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날이다. 탄자니아와 케냐가 공유하고 있는 이 공원은 절기에 따라 누떼가 움직인다. 우기의 구름을 따라 내리는 비가 초원을 적시고 새 풀이 자라난다. 풀을 찾아 세렝게티의 근간이 되는 동물 중 하나인 누떼가 움직인다. 누떼가 움직이면 누를 먹는 포식동물들이 이동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본 동물의 대이동. 그것을 볼 수 있는 곳인 것이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 세렝게티 국립공원까지는 반나절이 걸린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바로 경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아침을 잘 먹어야한다. 여기 식당 이모님 훔쳐갈 뻔했다. 끝까지 맛있네. 정들었던 숙소 직원들과 인사하고 아미르를 다시 만났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일정은 2박 3일 간 이어지기에 오늘부터 셰프가 동행한다. 새로운 팀원들을 미팅 포인트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차에 올라탔기에 우리는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차에 내리기 전에 중요물품을 다 뺀 가방을 자리에 살포시 올려놨다. 캠프사이트 주변가게를 어슬렁거리니 호객꾼이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가방 주머니에서 도라에몽 마냥 팔찌가 기념 코스터가 형형색색 끊임없이 나왔다. 필요한 물건을 사파리 끝나고 사고 싶었기에 스킵하고 다시 미팅 장소로 이동했다.
저 멀리 우리의 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뿔싸.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흰머리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 보자마자 우리는 눈을 맞추며 '맨 뒤로 가자' 말했다. 앞자리에 대한 욕심은 이미 없어졌고, 중간 자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연결다리가 될 거 같아 싫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보자마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오우. 여기 너희 자리니?"
아무래도 우리 짐을 보고 말한 모양이다. 바로 우리가 말했다.
"아니! 이제 너희 자리야!"
호쾌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좀 귀여웠다. 실제로도 이 분은 투어 내내 우리의 웃음 담당이었다. 특급 귀요미라고 해야 하나. 금방 모든 팀원이 모였다. 이번 투어일정 2박 3일을 같이 하게 되는 사람은 아미르와 셰프.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국적을 가지고 미국에 사는 노부부. 우리 결혼식 전날에 결혼한 브라질 부부. 그리고 우리. 총 8명이 모두 모였다.
여행 중에도 끝나고도 느끼지만 일행을 잘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사파리 투어는 차 안에서 계속 이루어진다. 이동과 구경. 이동과 구경의 반복. 정해진 공간에서 계속 반복되는 행위. 안 맞는 사람들과 계속 그 일정을 같이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나. 힘들다고 내릴 수도 없다. 내리면 사자가 있으니깐.
우리는 꽤. 아니 이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소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우리에게 완벽한 팀이었다. 성격도 모난 사람 아무도 없었고 다들 친화적이었다. 귀요미 러시아 할아버지는 말의 90%가 장난으로 가득했고, 중간 자리 브라질 부부는 영어가 약한 우리에게 열심히 설명하면서 귀요미의 드립 받기까지.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각자의 파트너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자신의 모국어로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게 제일 좋았다. 전체 채팅하다가 프라이빗 채팅으로 넘어갈 때 제약이 없다는 점? 그게 제일 좋았다.
3시간쯤 이동했을까? 차들이 많이 서있는 주차장쯤에 아미르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엄청난 분화구가 보였다. '응고릉고르' 마지막 투어일정에 가는 국립공원의 전경을 위에서 쳐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각국 대통령이나 국빈들이 오면 항상 들린다는 자리. 윈도 화면에서 봤을뻔한 엄청난 규모의 분화구가 보였다. 아미르가 빌려준 망원경으로 분화구를 열심히 보던 브라질 '마르코스'가 우리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저기 저 점들 보이지. 망원경으로 봐봐. 저거 다 버펄로야."
버펄로는 SUV만 한다. 육중한 덩치의 녀석들이 저렇게 많이, 그리고 조그마하다고? 망원경으로 먼저 본 N이 말했다.
"와 저거 진짜 다 버펄로야"
망원경을 건네받아 그 점을 따라갔다. 다 버펄로였다. 좀 더 이동하니 코끼리 등등 수많은 동물들이 보였다. '이게 아프리카구나' 전율이 느껴졌다. 잠깐 이자만 투어차량들은 계속 들어왔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근처 캠프 사이트로 이동했다. 셰프가 준비해 준 점심 뷔페가 열렸다. 이미 두 번의 점심식사를 했던 우리가 랩을 뜯고 접시를 나누는 아미르를 도왔다. 이틀도 짬빠로 쳐주나요? 먹을 준비가 끝나니 아미르와 셰프가 다른 공간으로 떠났다. 그때 마르코스가 말했다.
"아미르 같이 먹자!"
"나 사실 무슬림이어서 지금은 먹을 수 없어. 맛있게 먹어!"
우리가 떠났던 24년 3월 말~4월 초의 기간은 무슬림의 라마단 기간이었다. 이때 처음 알았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무슬림들은 식음을 먹는 행위를 하지도 남에게 보이지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떨어진 밤 시간에 식당이 열고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처음 알았다.
아미르가 배가 안 고픈 줄 알았는데, 안 물어봤던 우리의 착각이었다. 그룹투어가 개인투어보다는 활동성이나 자유도의 제약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탁월한 선택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 우리였다면 끝까지 안 물어봤을 것 같다. 아미르가 자리를 떠나고 식사를 시작했다. 맛있다.
다들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장난쟁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오르가즘' 드립을 치셨다. 매운맛과 단맛 오묘한 조화를 만들어낸 이 음식은 오르가즘 같다고. 갑작스러운 오르가즘 토크에 웃기면서 당황해하던 찰나, 브라질 친구들이 오르가즘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거를 '푸드 포르노'라고 해서 할아버지가 오르가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나도 알아 오르가즘...!
(점심을 먹었던 캠프사이트)
우리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 었다. 할아버지의 드립, 마르코스의 해설, 우리의 웃음. 맛있는 대화를 아니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이동을 시작했다. '응고릉고르'의 지명은 이 지역 소들의 목걸이 소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쇠로 된 종소리이지만, 예전에는 나무로 된 종을 썼기에 응고롱고르, 응고롱고 이런 소리가 나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응고롱고르. 응고릉고르 소리를 들이면서 서서히 고도를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마사이족의 마을. 지나가면서 보이는 기린들이 보였다. 응고롱고르에서 세렝게티 공원으로 가는 길에 인류의 조상인 오스탈루피테쿠스의 화석들을 기념한 공간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갔다. 어느덧 푸른색으로 가득 했떤 풀들이 노란색으로 바뀌어갔다. 세렝게티의 초입에 도착한 것이다.
세렝게티는 '끝없는 평원'이라는 마사이족 언어에 기반을 둔 지명이라고 한다. 끝없는 평원. 살면서 끝없는 평원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고향인 제천. 어딜 가도 빌딩이나 산들이 있었다. 끝없는 지평선을 본 것은 고작해야 서해의, 동해의 바다가 전부였는데. 육지의 지평선은 본 적이 없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니 육지의 지평선이 보였다. 끝없는 대지는 넓은 이 공원을 더 크게 보이게 했고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찌나 지평선인지 심지어 나중에는 멀리 보이는 코끼리가 몇 마리인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대지의 지평선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