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몬트(Tremont)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전시를 보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더니 알시노도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클리블랜드의 서쪽 지역에 가볼 예정이라며 너도 가보고 싶으면 같이 가잖다.
트리몬트 웨스트 개발공사(TremontWest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 일하고 있는 Dharma Valentin을 만나기로 했는데, 트리몬트(Tremont)라는 지역의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는 그녀가 동네를 구경시켜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에 바로 따라나서기로 했다. (여기에서의 삶이란 전시는 내일 봐도 되고, 모레 봐도 된다.)
우버를 타고 가는 동안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하늘과 살고 있는 동쪽 지역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서쪽 지역을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링컨 공원(Lincoln Park)이었는데, 주말마다 새로운 이벤트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공원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과 산책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우리 동네엔 공원이 정말 많지만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공원은커녕 길에도 사람이 없다.)
최근 새롭게 재정비하면서 놀이터, 수영장 등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는 이 공원에는 뛰어노는 아이들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도 많았다.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들이 보였는데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커피를 한 잔 하기 좋아 보인다.
공원 옆에는 예전에 공중목욕탕으로 사용되던 곳이 문이 닫힌 채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낡긴 했지만 조금만 리모델링을 하면 아주 재밌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이었다면 어떻게든 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차를 타고 트리몬트 곳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클리블랜드의 여타 다른 지역처럼 최근 개발 붐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심한 지역이라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주 계급 또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과정은 대도시의 교외화(郊外化) 현상과 관련이 있는데,
도시의 발전에 따라, 대도시일수록 중심 시가지에서 도시 주변으로 거주 인구가 확산하는 교외화 현상 발생
이 과정에서 교외 지역에 자본이 집중 투여되면서 급속도로 발전
도심에 가까운 지역은 교외로 이주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낙후지역으로 전락
이에 따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재개발을 주도하거나 저렴해진 땅값에 개발업자들이 땅주인과 협력하여 개발, 또는 값싼 작업 공간을 찾아 낙후지역에 모여든 예술가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활성화됨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한 '도시 재활성화'의 결과로 해당 지역은 주거 환경이 향상되고 부동산 가격 등 전반적인 자산 가치 상승
그에 따라 주거 비용도 높아져서 원래의 저소득층 주민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주지에서 밀려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중산층 백인의 교외화 현상이 두드러졌고, 이로 인하여 뉴욕·보스턴 등 대도시 도심은 흑인과 외국인 이민자를 비롯한 소수민족의 게토(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로 전락하였으며, 이후 1970년대부터 도시에 사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게토화된 도심의 낙후지역으로 몰려들어 자본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부유층의 이주를 촉진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두산백과)
Dharma Valentin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에는 최근 집값이 100% 이상 오른 곳이 즐비했고, 심한 경우 300% 넘게 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300%?!) 대부분 대출로 집을 산 중산층은 본인 평생 살 것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특히 경제력을 상실한 노년층의 경우, 이 문제를 극복하기 더욱 어렵다.
트리몬트가 특이해 보였던 건, 부유해 보이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웠던 건 리모델링을 해도 될 정도의 괜찮은 집도 모두 부시고 새로 짓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 새로 개발된 지역의 집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보여서(우리나라 아파트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셈이지만) 우리는 그 집들을 보며 여기에 살면 내 집이 어딘지 찾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원주민은 떠나고 골목의 멋은 사라지고 남은 건 삭막해 보이는 새 주택뿐이었다. (Dharma Valentin는 이런 곳은 이웃과의 교류가 전혀 없어 동네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32도의 더운 날씨에 2시간 반에 걸쳐 동네를 돌아보고 나서 지친 우리는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 잠시 쉬기로 했다. (Dharma Valentin가 학생 때부터 자주 오는 곳이라고 했는데, 모처럼 커피 다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인종 평등에 관한 트레이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알고 보니 그녀도 이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단다. (트레이닝에 관한 상세 내용은 day 16. 악몽의 트레이닝 참고)
본인은 클리블랜드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지만 그들의 트레이닝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트레이닝을 받던 중에 같이 갔던 동료와 함께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처럼 그들에게 제대로 피드백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난 외국인인 우리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도 그 트레이닝에 관해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동시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알시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커피를 마신 후, 작고 예쁜 갤러리와 그 앞에 주차되어 있는 빨강, 노란 차가 만들어낸 우연의 색의 삼원색(빨, 노, 파)을 사진에 담고, 트리몬트웨스트 개발공사(TremontWest Development Corporation)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서 Dharma Valentin의 동료와 함께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를 계속 보다 보니 행정 구역이 직선으로 나뉘어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와 알시노는 그 부분이 계속 이상했다. 지형에 따라 행정 구역을 나누는 게 일반적인데, 마치 지도에 자를 데고 선을 그어 행정구역을 나눈 것 같은 지도가 이상해 보인 것이다. 공터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정치 논리. 이에 따라 현재도 빈번하게 변동 중이란다.
딱 봐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그럴싸한 건물들이 즐비한데 이상하게 사람은 없고, 바로 건너편에는 유령이 살 것 같은 빈집이 다섯 집에 하나꼴로 있는 곳. 이런 곳은 한 달 렌트비가 단돈 25달러라는데, 어떤 곳은 집값이 300%씩 뛰는 곳. 이곳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