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포기할 수 없는 정치, 경제적 이유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욕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소 지도와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극 하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북극해'와 주변 국가, 그리고 북극 항로가 표시된 지도입니다.
붉은색, 녹색, 하늘색 선은 실제로 배가 지나다니는 3개의 북극 항로로 이 지도는 북극연구소(The Arctic Institute)자료입니다.
붉은 선은 캐나다 위를 지나는 북서노선(NWP), 녹색 선은 가장 북극점에 가까운 북극해 노선(NSR), 그리고 하늘색은 유럽의 북해로 이어지는 북해선 (NSR)입니다.
그리고 북극을 거쳐 미국과 유럽 쪽으로 나오는 이 3가지 노선길 한복판에 바로 '그린란드'가 있습니다.
❶ 덴마크는 사실상 그린란드를 방치했다?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의 동부나 서부의 큰 도시를 향해 ICBM을 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걸 미리 포착해서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물론 스타링크 같은 위성도 있지만, 현재 그린란드와 캐나다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가집니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국의 잠수함이 그린란드 인근을 지나 미국 쪽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린란드'를 장악하고 있지 못하면, 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 그린란드에 미국 우주군 기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린란드의 서쪽 끝에서 'ICBM 방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바닷속까지 챙길 여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린란드의 실소유주인 '덴마크 군'은 돈이 없어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린란드의 참혹한 방어 수준'에 대한 기사를 냈습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서방의 북극 방어는 몇 마리의 썰매견과 그린란드의 노후 선박에 의존하고 있다"
굳이 썰매견 얘기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까지 순찰선의 앞 갑판에 장착된 76mm 함포는 지난 10년 동안 조준 시스템이 없어 사실상 전시용에 불과했다"라면서 "그린란드 해역을 순찰하는 4척의 대형 덴마크 함정은 30년이 넘은 배인데 유지 보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잠수함 탐지 소나 시스템을 제거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도 공개했습니다.
특히 일부 전직 덴마크 해군 지휘관들은 "이 배가 NATO 기준상 군함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면서 "러시아 선박들이 사방에 있고, 중국 선박들도 사방에 있다"면서 "하지만 덴마크는 그것들을 잘 처리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인 겁니다.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인구 600만명의 덴마크가 3,200km 떨어진 그린란드를 보호하고, 나아가 북아메리카 대륙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본격적인 의문을 제기해 왔는데, 실제로 투자할 필요 없는 '그냥 먼 동토(凍土)' 대우를 해왔던 사실이 새삼 드러난 겁니다.
결국 덴마크 정부가 부랴부랴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욕심을 이 정도 선에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덴마크가 말하는 수준으로는 절대로 러시아 잠수함이나 러시아 폭격기를 찾아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토의 그린란드 및 아이슬란드 주변 해역의 해저 감시 능력은 감소한 반명 러시아 잠수함들의 '은밀함'은 더 좋아졌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상 현재 그린란드 동쪽 라인은 러시아에게는 프리 패스인 셈입니다.
❷ 중국의 북해 실크로드와 그린란드
위 지도만 놓고 보면 "아니 중국은 러시아 밑에, 저 아래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장의 지도를 더 보면, 중국이 왜 그린란드에 와서 기웃거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밀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 그러니까 중국의 팽창 정책 방향을 설명한 그림인데, 내륙으로 이어지는 과거 실크로드 뿐 아니라, 예전 당나라가 갔던 길과 유사한 남쪽 해상로, 그리고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북쪽 해상로로 나뉘어 있습니다.
중국 경제 입장에서 북쪽 해상로는, 지구 온난화로 더욱 항해가 쉬워질 경우, 유럽으로 가는 최고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그린란드가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이 항로를 통해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러시아 쪽에 가까운 NSR 항로를 통해서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러시아쪽에 가까운 항로의 경우 2014년부터 2022년 사이에 무역량이 755% 늘었다"라면서 "NewNew Shipping이라는 중국 상선이 최초로 북극해를 거쳐 상하이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첫 교역을 마쳤다"라고 전했습니다.
중국에서 북극해까지의 경제 항로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직은 북극항로에 얼음이 많기 때문에 절대량이 많은 건 아닙니다.
2022년 기준으로 북극항로를 이용한 선박은 약 1,700척 정도로, 수에즈 운하 23,000척, 파마나 운하 14,000척에 비하면 아주 이용량이 적은 통로일 뿐입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일대일로를 포기하지 않는 중국이 유럽과 러시아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통로로 사용할 경우에는 이용량은 빠르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북극해와 그린란드 인근 바다에 중국 배가 출몰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이미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돈 없는 그린란드 자치 정부를 위해 "우리가 공항 지어줄께"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등 '돈 없는 다른 나라'에게 했던 그대로 경제 협력 관계를 늘리려고 계속 추파를 던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아예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❸ 트럼프의 광물 욕심
그린란드에는 엄청난 자원이 있습니다. 특히 네오디뮴, 디스프로슘과 같은 희토류 광물 등 천연 자원이 풍부합니다. 네오디뮴 자석은 사물인터넷이나 미사일 유도시스템 같은 첨단 장비에 쓰이고, 디스프로슘은 전기차 모터나 풍력 발전, 원자력 발전 등에 꼭 필요한 자원입니다.
게다가 이런 희귀 자원들의 경우 미국은 생산하지 않고, 러시아와 중국이 생산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맞서서 서로 경제 제재를 치고 받아야 할 수도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래서 그린란드의 희귀자원이 꼭 필요합니다.
미국 CNN은,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최근 비공개 행사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가 핵심 광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고, 우리를 흡수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의 자원으로 이득을 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합병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합병하고 싶어하는 것은) 실제 상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자원을 가지고 협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120가지 광물 중 117가지에서 대규모 매장량을 보유한 광물 강국입니다. 특히 미국이 지정한 국가 안보 전략 광물 50개 중 22개를 갖고 있습니다.
전세계 모두가 협상의 대가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카드로 '희귀 자원'을 쓰겠다고 나설 판인데, 상황이 이렇게 될 수록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더더욱 그린란드가 꼭 필요해보입니다.
PS. 그린란드는 땅 욕심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사겠다"라고 처음 얘기했을 때는 "왜 하필 그린란드?"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 러시아의 ICBM, 폭격기, 잠수함 등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한 그린란드의 전략적 중요성 2) 군사적 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 덴마크와 유럽 연합 국가들로부터 버려진 '북미 관문' 그린란드의 상황 3) 지구 온난화만큼 빨라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북극해 진출 상황 4) 본격적으로 자원 무기화를 시작하는 중국 정부와의 패권 전쟁 등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 로베르토 브리거 EU 군사위원장이 "그린란드에 EU 병력을 주둔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EU가 자체 군사력이 없어 무슨 의미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영국의 텔레그래프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편입 의사 표명에 따른 대응책"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린란드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유럽 각국의 의도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한 발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EU의 의도야 어찌됐든, 유럽이 더 이상 '방위비 무임 승차'에 눌러 앉아 있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살짝 숟가락만 올리는 유럽 국가들이 얄밉기는 해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NATO 회원국들'과 함께 그린란드와 북해를 지키는 것이 모양상 실리상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가 어디까지 갈까요? 그린란드를 미국 땅으로 만들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