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모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선물들의 의미
인도는 전통적으로 '줄타기 외교'의 명수입니다. 모디 총리 역시 그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세계가 편을 2개로 나눠 치열하게 싸울 때에도 인도는 양다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든 행정부 때는 '미국-호주-일본-인도'로 이뤄진 쿼드에 들어가 미국과 군사 협의체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서방으로부터 경제 재제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석유와 무기를 제일 많이 사들이는 초식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왔습니다.
모디 총리는 "미국 석유와 무기를 사겠다"라는 선물을 내놨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꺼이 그 선물을 받았습니다.
관세를 엄청나게 때려도 시원치않을 정도로 대 인도 무역 적자가 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렇게 조용히 정상 회담을 끝냈을까요? 그건 그가 받은 선물, '석유와 무기'가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숨겨진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❶ 러시아 석유 잘 사주는 모디 총리
이 선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와 러시아'의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도-러시아 친밀한 관계를 '석유와 무기'라는 2가지 요소로 분석했습니다.
인도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 이후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러시아 석유를 수입했습니다.
2021년에는 인도의 원유 수입 중 러시아산이 2%에 불과했지만, 2024년 4월부터 10월까지 그 비율은 거의 40%까지 급증했습니다.
신용평가사 ICRA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값싸게 들여온 러시아산 원유 덕분에 인도가 최소 130억 달러를 절약했다고 추정했습니다.
러시아의 돈줄을 끊어야 했던 미국과 서방은 협박 반, 애원 반의 심정으로 인도에게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인도는 "러시아와는 수십 년 우방" "중국을 견제하려면 러시아와 친해야 한다" "인도 경제에는 값싼 러시아 석유가 꼭 필요하다"라는 다양한 이유로 이를 거절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가 인도 정유업체 릴라이언스에게 하루 50만 배럴의 석유를 10년 간 공급하는 대규모 계약도 맺었습니다.
❷ 러시아 무기로 무장한 인도
이코노미스트는 또 "인도 국방력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제 무기가 차지하고 있다"라면서 "지난 20년 동안 수입한 인도 무기의 65%는 러시아산"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최근에도 이런 유착 관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러시아 국영 방산업체는 인도에서 전차 포탄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인도 국방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40억 달러 규모의 레이더 시스템 구매를 포함한 방위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8,000km를 감시할 수 있는 이 레이더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겁니다.
그리고 곧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러 인도를 방문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인도가 생각하는 러시아는 번영과 안보의 원천"이라며 "인도의 다중 정렬(multi-aligned) 외교 정책의 핵심 축이 바로 러시아"라고 분석했습니다.
** 인도의 multi-aligned 외교는 다중정렬 외교, 균형 외교라고 번역이 되는데, 전통적인 비동맹 주의를 유지하면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인 외교 전략을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실리를 취하는 방식입니다.
❸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
그리고 '러시아의 절친' 모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워싱턴에서 만났습니다. 멕시코나 캐나다 같은 우방국에도 가차없는 관세를 때릴 수 있다는 걸 직접 시연한 뒤 만났습니다.
모디 총리는, 굳이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인도는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란 걸 알고 회의장에 들어갔을 겁니다.
현재 인도는 미국에 17%의 관세를 매기고 있는 반면, 미국은 인도에 3%의 관세를 매기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대 인도 무역 적자는 457억 달러에 달합니다.
CNBC는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워딩을 이렇게 뽑았습니다
"인도와의 무역 적자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이 올해부터 인도에 대한 군사 장비 판매를 확대할 것이며, F-35 전투기를 제공할 것"
"인공지능 및 반도체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며 전략 광물의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집중할 것"
인도의 명운이 걸린 주요 수입품, 그것도 대부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수입품인 '석유와 무기'를 이제 미국에서도 수입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모디 총리는 '러시아 편이 아니라 미국 편이 되어 볼까 한다"는 메시지를 준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선물을 조용히 받았습니다.
다만, "인도가 부과하는 만큼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는 의미심장합니다. 언제든지 '인도의 변심'은 응징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CNBC는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소의 다니엘 발라즈의 인터뷰를 인용해 "긍정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인도 관계는 여전히 마찰의 징후가 남아있다"라면서 "특히 인도와 러시아의 밀접한 관계는 바로 해결되기 어려우며, 지속적인 골칫거리 (a sore point)가 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화려한 외교전이 그 서막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