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Jul 01. 2020

단짠단짠 모녀 사이

우리 모녀 또 싸우다 - 아빠 기일을 앞두고

내게 가족이라 불리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엄마.


스무 살 무렵 아빠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외동딸이던 나는 단 둘이던 가족이 그나마도 절반인 단 하나로 줄어들 게 된 것이다. 심지어 비혼 지향이라 추가로 가족이 생길 확률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더 소중할 내 단 하나의 가족, 엄마.


문제는, 소중하지만 소중함을 느끼는 딱 그만큼 서로에게 기대가 커서일까, 너무도 자주 싸운다는 점이다.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에 이골이 나고 지겨워서 너덜너덜해질 만큼 자주.


오늘은 아빠 기일이다.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준비할 제사음식이 많기에 미리 본가에 왔다. 엄마와 단 일박을 같이 지냈는데도 그 사이에 여러 번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오늘은 그중 일부 얘기만을 적어보기로 한다.


엄마는 어젯밤에 미리 녹두전을 부쳐놓고 싶다고 하셨다. (이미 이 부분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꾹 참는다. 제사는 오늘 밤. 그렇다면 오늘 아침부터 부쳐도 될 일이었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부루스타를 켰다. 주방의 레인지에선 엄마가 다른 음식들을 준비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서 있는 게 힘들다고 하시고, 나는 바닥에 앉는 게 힘든데, 대체 왜 이렇게 진행해야 하는지 이 부분도 매번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미 얘기했었고 결론은 안 나고 싸우기만 함) 얘기하면 또 싸우니까 꾹 참는다.


"들러붙으니까 잘 달구고 해야 해" 엄마의 잔소리가 또 이어진다. "엄마, 전 부치는 건 내가 더 잘해요. 걱정 말아요" 하며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웬걸. 분명 잘 달구고 시작한 전 부치기는 어느새 바깥쪽을 보니 바닥에 눌어붙고 있는 느낌이었다. 뒤집으려 해 보니 역시나! "엄마, 이거 코팅 안 된 프라이팬이야?"라는 내 질문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프라이팬 잘 달구고 하랬지!!"라는 엄마의 호통만이 남았다. 잘 달구고 했는데도 이렇게 됐다는 내 말에, 엄마는 화만 낼뿐이었다. 새로 구입한 건데 잘 안될 리가 없다며, 네가 내 말을 안 들어서 잘 안 되는 거라는 엄마의 논리. 새로 구입했는지 쓰던건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코딩이 된 거냐 아닌 거냐가 중요한 건데 왜 자꾸 엄마는 다른 얘기를 하는 걸까.


얼마 전에 요린이(요리 초초보자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요리+어린이)들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 <백파더>에서 두부부침을 가르쳐주는데 백종원 아저씨가 "프라이팬 코팅이 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요"라는 말을 하는 걸 들으며, '요즘 코팅 안 된 프라이팬이 있다고?!'라고 생각했던 난데. 그런 프라이팬이 있고 그런 걸 구입하는 게 우리 엄마라니... 그리고 그 덕분에 혼나기만 하고 있는 건 나고...


아무래도 뭔가 억울하다. 그런데 엄마는 내게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씩씩거리며 본인이 다 부치시겠단다. 내가 하겠다고 입씨름을 하다가 지쳐서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리를 들으니 엄마도 전이 잘 안부쳐지는 모양이다. 코팅 안 된 프라이팬에 전 부치기가 어디 쉬운가. 고단할 엄마를 생각해서 다시 가서 도와드리고 싶지만, 아까의 싸움 패턴이 또 리플레이될 게 뻔해서 관두고 늘어진 척 티비만 보다 방에 들어가서 잤다.


밤새 창밖에서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엄마 집은 전원주택이라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일어날 때가 많았는데 개구리 소리라니. 장마철이라 그런가. 개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 합창을 듣기가 더 힘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큰 지 방음이 어느 정도 잘되는 창을 다 뚫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밤새, 그리고 아침을 넘어 점심무렵까지도 그들의 합창은 이어졌다. (너희 체력 정말 대단하다) 덕분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부지런히 볼일 보러 외출하신 엄마의 쪽지를 식탁에서 발견했다.



맞춤법이 틀린 걸 알면서도, 우리가 '자장면'은 그 맛이 안나 '짜장면'이라고 쓰듯이 '볶음'을 꼭 '뽂음'이라고 쓰는 우리 엄마.


남들이 보면 별 거 아닌 김치볶음밥이겠지만, 식당 김치나 남의 김치를 잘 안 먹는 딸인걸 알기에. 집에만 오면 입버릇처럼 "엄마 나 김치볶음밥 먹고 싶어"하는 딸인걸 알기에.


엄마의 이렇게나 귀여운 화해의 제스처인 것이다. 맛있게 후다닥 해 먹느라 사진은 못 찍었지만, 엄마의 사랑만큼 김치가 많아서, 이렇게 남긴 김치라도 기록해놓는다.


그리고 나도 화해의 의미로 엄마한테 카톡을 보낸다. "엄마, 김치볶음밥 잘 먹었어요. 역시 맛있다. 고마워"



"엄마는 왜 소리부터 질렀을까?"

단짠단짠 모녀 사이 후기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