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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l 09. 2020

여러 번 해봐도 이별은 아프다

너와 헤어지고도 너로 가득찼던 순간들

네가 울었던 그 책ᅳᆯ 밤낮으로 읽었다. 너와 함께 울지 못해 참으로 울었다.



배우 박정민이 자신의 서점입구에 써놨다는 저 짧은 글를 보고 그와 헤어져있던 시간  여러 순간들이 떠올랐다. 여러 지인들에게 '여름이 네가 정말 좋아할 만한 드라마'라고 추천받았음에도 보고 싶지 않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이선균과 아이유가 주연을 맡았던 <나의 아저씨>였다. 그런데 어느  그가 어떤 씬을 자세히 설명하며 건네준 순간, 실제로  것보다  선명히 그려졌고, 그는 내게 건넨 이야기 외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져서  드라마를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뒤늦게 정주행을 시작했을 무렵 ( 당시 짧게 만났던) 우리는 헤어졌고, <나의 아저씨> ost는 드라마가 끝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비오는 날마다 까페에서 울려 퍼지곤 했다.


헤어지고 난 이후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가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는 사람인 걸 아는데도 일부러 들어가보지 않고, 짧은 기간 많이도 주고 받던 수많은 얘기들이 담긴 카톡도 열어보지 않고, 더 수많고 오랜 시간동안(둘 다 직장인인데 평일 밤에 6-7시간 동안 통화를 하기도 했다)의 통화는 뭐 당연하게도 복기해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와 ost덕분에 어느 하루는 온통 그로 가득차기도 했었다.


드라마 정주행 다 마쳤는데. 마음에 남는 장면들에 대해 쫑알쫑알 밤새도록 얘기 나누고 싶은데. 그와는 이런 대화조차도 너무 즐거웠는데. 감정적으로 내가 가려웠던 부분도 참 잘 긁어주고, 내가 놓쳤던 부분도 예민하게 잘 기억해 알려주고, 나와는 또 다른 섬세한 해석도 내어놓고.

그와 헤어지던 날, 5분이라도 더 빨리 만나서 데이트하고 싶은 마음에 외출 준비를 서두르다가 옷방 방문에 새끼발가락을 찧어 생에 처음으로 깁스를 하고 다녔다. (한 달 반 동안 깁스를 하고 출퇴근하느라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 물론 그 아픔이 다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만났지만, 깁스를 하고 다니는 내내 그를 떠올렸다. 발을 다쳤던 그 날도 긓게나 걱정하며 업어주고 다녔는데 어떻게 그런 우리가 헤어질 수가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들의 그날을 계속해서 리플레이했다. 아픈 내 마음에 비하자면 아픈 발가락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헤어졌던 날, 브로콜리 너마저의 어떤 곡 뮤비를 보며 그는 자신의 얘기라고 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여러 노래들을 꽤나 좋아했지만 그 노래는 몰랐었고, 뮤비에 등장하는 남성배우(공명)만 잘 알고 있었다. 헤어진 시간 동안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내 얘기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종교적 상황이 아니라 좀 다르긴 하지만 결론은) 공명이 맡은 그 뮤비 속 남자주인공이 십수년 전 어느 시절의 그였을 걸 생각하니, 지금 다 이겨내고 잘 살고 있는 걸 아는데도 마음이 미어졌다. 나는 이제 그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 라고 현실을 직시해보려는데도 마음은 따로 놀았다.


하필 그 즈음 브로콜리 너마저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고,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리고  그만큼 아팠던 노래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말도 ᆫ되지만) 그가 내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그를 미워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잘 안됐고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다시 만난 우리는 얼마 전 유튜브로 이것저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헤어졌던  그가 들려주었던 그 노래의 뮤비가 랜덤 재생됐다. 그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여름아, 공명 공명!”하면서 우리가 아는  남성배우가 저 뮤비에 나온다고 알려줬다. 공명은 최근에 우리가 함께 정주행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나와서 대중적으로도, 그리고 (배우들을  모르는) 그에게도 인지도가 생겼다. “ 배우가 공명인 거 알지. 자기야, 나 저 노래 알아. 우리 헤어지던 날 자기 얘기하면서 저 노래 알려줬었잖아" 라고 아무렇지 않은  얘기했다. 그러자 그가 바로 영상을 중지시켰다.


"여름아, 앞으로 이 노래 듣지 말자"




마냥 밝기만 한 사람도, 마냥 어둡기만 한 사람도 없듯이, 밝고 어둡고 즐겁고 슬픈 여러가지 일들이 모이고 쌓여 한 사람을, 한 사람의 세계를 이뤄간다. 한 사람도 그럴진데, 그런 두 세계가 만난다면 어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을까. 온갖 다양한 일들을 함께 만나고 이겨내고 이뤄가는 게 우리의  운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도 그와 함께라면 별로 두렵지 않다. 기꺼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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