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편 중에서 가장 사랑받고 잘 알려진 것이 시편 23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죽을 것 같이 힘들던 시간을 지나올 때 문득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이 허무한 내 삶 가운데에 다시 마주한 익숙한 이 말씀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에는 그랬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 주셔야만 하고, 무조건 내 요구를 들어주셔야만 하고, 또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셔야만 했다. 하나님이 기도 응답 주신다니 내게 응답 좀 줘 보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선하시다니 내 삶을 해피엔딩으로 좀 만들어 보시오. 이런 식의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성경에는 기도 응답에 대한 분명한 약속들이 많이 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때가 많다.
왜일까? 나는 지난 10년간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어 실망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많다. 우리의 믿음을 감정이나 느낌으로 확신하려 는 사람들은 자기기만에 또는 자기 최면에 빠지기 쉽다.
어떤 사람들처럼 '믿습니다!'로 자기 긍정적인 확신이 믿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각적인 응답이 없어도 내가 주님의 뜻을 행하려 노력하며 주님을 따라간다면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님께서 지금의 나의 상황이 최선이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라 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내 기도가 응답이 안 되고 더 어려워지면 '하나님은 나를 버린 것 같아! 하나님은 정말 계신 거야?'라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혹은 인간관계나 건강 문제, 또 다른 난감한 문제로 앞이 캄캄하다면 낙심하며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물론 우리의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어린아이의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고 또한 개인적인 사사로운 문제들도 응답해 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응답되지 않는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말자.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옮길 수 있으면 옮겨 달라고 했지만'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우리가 “철이 들었다”라는 말을 하는데 내가 어릴 때 삶에서 당 연한 것이라 여긴 것들 부모님은 날 사랑하고 무조건 다 책임지고 해줘야만 한다는 것, 그러나 내가 자라서 부모가 되어보니 그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 된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내놓으시오’ 식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던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도 내 건강도 내 소유물도 내 관계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 때 사람은 비로소 겸손해지는 듯하다.
그런 겸손을 자각할 적에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실 것이다. 후회가 많을수록 반성의 시간이 길수록 삶은 겸손해진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지치고 지나간 그 시간이 허무하고 억울하기도 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방황하 기도 했고 심장이 아픈 극심한 고통도 느꼈다. 그 시간을 견디면서 나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 십자가의 고통이 이와 같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불행을 허락하셨다면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 좋을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인생은 C (Christ)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이 없으리로다. 나의 과거는 모두 완벽한 스토리다. 그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