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독서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는 최근에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글라이더가 다른 비행기와 차에 이끌려 날아오른 후에 줄을 끊고 활공하는 것과 같다. 사색에 잠기려면 그 계기가 될 만한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매달려 있으면 혼자 날아오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혼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지식을 배우는 것이야 말로 독서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사색’ 그리고 ‘저자와의 대화’가 가능한 것은 높은 수준의 독서이다.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한 초보 독서가들에게 사색과 대화를 통한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독서의 최종 목표는 사색과 대화 그리고 그 이상의 깨달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목표를 세우면 안 된다. 일단 즐거움을 먼저 깨닫게 해야 한다.
독서를 3단계(초급, 중급, 고급)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까.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구분이다. 스스로는 고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중급이나 초급처럼 보일 수 있다. 순전히 주관적으로 내 독서의 단계를 측정하자면, 중급 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사관학교 3학년 여름의 기억이 떠올랐다. 공사생도들은 학기 중엔 공부를 하고 매년 여름과 겨울 3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는다. 몸은 여전히 기억한다. 여름 군사훈련은 더욱 힘들었던 것을.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위험한 것을 고르자면, 단연 낙하산 강하훈련이다.
쉽게 설명하면,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려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한 후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목적인 훈련이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들으면 스카이 다이빙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뭔가 낭만적이고 시원하고 짜릿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3주간 3단계의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1단계는 지상에서 무거운 낙하산을 매고 비행기에서 나갈 때의 자세와 땅에 착륙할 때 자세를 연습한다. 1주일 동안 하루 8시간씩 매일 같은 자세를 반복 연습한다. 그래도 실전에 가면 그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2단계는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m 타워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1주일간 연습한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아래서 볼 때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 11m의 높이가 올라가서 문 앞에만 서면 아득하게 느껴진다. 꿀팁은 절대 아래를 쳐다보지 말고 하늘만 바라봐야 한다. 많은 생각하지 말고 지상에서 연습 하던 대로 몸의 기억력을 믿고 뛰어내린다. 반복할수록 자세도 자리 잡혀가고,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3단계는 보상의 시간이다. 3주간 열심히 연습했던 자세를 실전에 딱 한번 사용할 수 있는 기회다. 긴 훈련에 비해 보상의 시간은 찰나다. 시끄러운 C-130 수송기(군용 항공기)에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로 앉아 이륙을 기다린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이라고 적고 싶지만, 사실 두려움이 더 큰 시간이다. 비행기 엔진과 함께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수송기가 이륙해서 일정 고도에 다다르면 뛰어내릴 준비를 한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비행기는 무척이나 빠르니 앞사람이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뒷사람은 목적지와 멀어져서 이상한 곳에 착륙할 수 있다. 문이 열리고 동기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얼떨결에 같이 뛰어내린다. 한동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이 들 수 없는 시간이다.
잠시 멍한 시간이 지나면 눈 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낙하산이 나를 공중에서 다시 공중으로 떠오르게 한다. 그제야 살았음을 느낀다. 잠시나마 주변에 고개를 돌려 풍경을 구경 할 수 있다. 그리고는 바로 착륙 준비를 한다.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면 아주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리는 속도랑 별반 다르지 않다. 발에 땅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옆으로 돌아야 한다. 고민하면 늦는다. 그저 몸의 감각을 믿고 마치 낙법 하는 것처럼 굴러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 작가는 혼자서 날아오르는 것을 사색에 비유했다. 책을 읽고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독서의 진수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독서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목표가 있었고, 단계를 세웠다. 그리고 그 단계를 하나하나 넘어서는 독서를 했다. 그래서 사색이 없는 실용을 위한 독서다. 문유석 판사님의 <쾌락 독서>처럼 즐겁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책을 읽었다. 치열하게 읽었고 간절하게 읽었다. 책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고, 삶이 변화되기를 빌었다. 그래서 내 독서는 사색을 위한 독서보다는 생존을 위한 독서에 가깝다. 생존 독서.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낙하산을 매고 하늘에서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처럼, 독서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문학책도 읽고, 말랑말랑한 에세이도 읽는다. 그리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쓴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진출처>
패러글라이딩 사진 : https://unsplash.com
공사생도 공중강화훈련 사진 : 공군사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