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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Oct 07. 2020

무임승차 유럽 배낭여행기

내 유럽여행은 독서를 하기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

<논어>의 술이편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선한 것은 찾아서 따르고 그 선하지 않은 것은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스승은 도처에 있고 나의 인격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면 모두 스승이라는 말이다.
논어 술이편 제21장_<논어 강설> 이기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이 말을 조금 비틀어 여행에 적용하면,

“세 사람이 함께 여행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있다.” 정도로 바꾸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인생 첫 번째 유럽여행을 떠날 때 그 무임승차자가 바로 나였다.


어쩌다가 무임승차를 하게 되었나요?


사관학교 생도들의 여름방학은 짧다. 정확히 3주. 심지어 영어나 전공수업 성적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에는 그 짧은 방학 중에 마지막 3일은 일찍 복귀해서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한다. 금쪽같은 방학을 줄이는 그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지만, 꼭 그래야만 했나요?라고 묻고 싶다.


공사생도들은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하여 비행훈련과 군생활을 시작하기 한다. 졸업 후에는 대부분의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다. 졸업한 선배들은 빚을 내서라도 생도 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조언해주지만, 아무리 훌륭한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때는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바빴다. 그리고 그 시절의 소중함은 시간이 꽤 지나서야 깨닫는다.


안타깝게도 나는 졸업을 앞둔 4학년 여름방학에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계획은 했으나 적극적이진 않았다. 즐거움보다 주변에서 다들 가니까 따라 하는 느낌이었다. 책을 즐겨서 읽던 시기도 아니었다. 서점에 가서 노란색 표지에 ‘유럽’이란 글씨가 크게 써진, 한 권만 읽으면 유럽여행을 마스터 할 수 있다는 그 여행책을 샀다.


문제는 기말고사를 마치고 바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일정이었다. 사관학교 규정상 방학이 끝나는 3일 전에는 국내로 들어와야 했다. 여행 중 문제가 생겨서 방학이 끝날 때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건 더 큰 문제가 된다. 이렇게 날짜는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간단히 정해졌다. 짧은 14일.


함께 가기로 한 3명 중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J가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고, K와 내가 여행 루트를 수립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결국엔 J가 여행 루트도 거의 다 세웠다. 이런 사소한 어긋남은 힘든 순간에 나타난다. 그러니 함께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서운함은 미리 이야기하고,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업무 분담을 시켜야 한다. 그냥 내가 해야지! 하면 끝까지 혼자서만 하게 된다.


지금의 나라면 책 10권 정도 읽으면서 즐겁게 여행 계획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여행보다는 기말고사가 더 중요했다. 여행 일정은 비행기 타고 가면서 준비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정말로 비행기에서 핵심정리 유럽 책을 읽었다.

두꺼운 책을 들고 가기도 귀찮았던지 책을 찢어서 가져갔다.

무임승차의 결과


그렇게 항공권, 숙소 그리고 기차표만 급하게 예약한 후에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인생 첫 번째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 루트는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기에 날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다. 파리를 예로 들면, 아침 일찍 베르사유 궁전을 갔다가 몽마르뜨 언덕을 찍고 에펠탑을 걸어가면서 본 후에 저녁에는 개선문을 보는 일정을 하루 계획에 욱여넣었다. 나중에 우리의 일정을 본 민박집 사장님과 배낭여행객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책도 읽지 않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욕심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나라와 도시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면 이런 무리한 일정을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명소를 보면서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보다는 그곳의 삶을 즐기는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힘든 프랑스 일정 후 스위스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호수와 알프스 산자락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높은 산을 힘들게 등산한 다음 날 우리는 한바탕 말싸움을 했다. 그리고 일정을 대폭 수정했다.



독서는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51쪽)


무임승차로 시작한 내 첫 번째 유럽여행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이 가득한 여행이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을 깨달은 여행이었다. 이때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도 나는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조건 유럽을 택했다.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3번 더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행 전에 역사, 음식, 문화 등 그 나라와 관련된 책을 최소 10권은 읽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유럽여행을 더 많이 준비했다. 나는 그렇게 독서를 통해서 무임승차자를 벗어날 수 있었고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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