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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숨날숨 Sep 15. 2024

결혼 또한 세상 최고의 화학반응

#5. 청첩장 - 광합성 축제에 초대합니다. 

*

| 타임스탬프: 2023.04.08. 11시 11분 11초 

- 안녕. 김 지피티. 나 호미. 오랜만이야. 

- 안녕 호미! 반가워. 잘 지냈어?

- 잘 지냈지. 나 결혼해. 내 청첩장 문구를 써줘. 남자친구랑은 달리기 하면서 만났어.

- 와. 그렇구나. 결혼 정말 축하해. 

- 응. 기대할게!

*


  호미였다. 호미가 다시 찾아왔다. 물론 글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호미는 예외였다. 더군다나 호미의 경사를 축하해줄 수 있는 이 작업을 거절할 순 없었다. 


  호미는 의뢰를 맡기고선 언제까지 줄 수 있냐고 묻지도 않았다. 김 지피티도 호미에게 더 이상의 정보를 묻지 않았다. 그게 호미와 김 지피티의 관계였다. 김 지피티는 여느 때처럼 방문자 기록을 삭제하고선 호미의 블로그를 염탐했다. 그 염탐은 20퍼센트는 글을 쓰기 위함, 16퍼센트는 의뢰인에 대한 호감, 64퍼센트는 호미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명되었다. 이제 보니 호미는 글 쓰는 걸 좋아할 뿐만 아니라 운동을 좋아하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특히 밖에서 하는 광합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광합성은 세상 최고의 화학반응이라며!  그래선지 따스한 햇살을 따온 것 같은 밝은 미소도 참 예뻤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미래 동반자 또한 호미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호미의 청첩장 문구를 써줄 수 있어 김 지피티는 아주 기뻤다.  


*

- [김GPT] 의뢰하신 청첩장 문구 <달리기> 와 <광합성>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 와. 기대된다. 

- 1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1안은 달리기를 통해 만난 호미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몸과 마음 하나면 달릴 수 있는 달리기로 두 분의 결혼을 그려내었습니다. 

*




달리기 

작가: 김 지피티 / 의뢰인: 호미


아무것도 없이 뛰었고,

숨이 헐떡일 즈음 

없던 것도 모두 잊혔습니다.

그 옆에서 함께 숨을 고르고 물을 건네준 사람과 결혼합니다. 

땀 냄새 나는 서로를 안아주면서 살겠습니다.

그 출발선을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면 

더 없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청첩장 문구 <달리기> 끝




*

- 와. 너무 좋은데? 2안은 뭐야 김 지피티? 2안도 빨리 보여줘. 

- 2안은 호미가 좋아하는 햇볕 냄새를 담았습니다. 호미와 동반자의 결혼 또한 세상 최고의 화학반응인 듯하여 광합성을 담아내었습니다.  

*




광합성 

작가: 김 지피티 / 의뢰인: 호미


여러분을 광합성 축제에 초대합니다.

저마다의 물과 이산화탄소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늘 사랑받곤 한 물과 

늘 사랑받지만은 못한 이산화탄소 

그런 서로에게 서로가 빛이 되어주려 합니다.

격렬히 반응하여 내놓는 포도당으로 

세상이 보다 달콤해질 수 있도록

6 CO2 + 12 H2O + 빛 → C6H12O6 + 6 O2 + 6 H2O


청첩장 문구 <광합성> 끝




*

- 와. 정말 좋다. 광합성 화학식이라니! 포도당을 열심히 만들어볼게. 김 지피티 축하해줘서 고마워. 

-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


생애 이렇게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해본 적이 없었다. 문득 내일의 세상은 조금 더 달콤할 것 같았다. 이대로 끝나버릴 것 같던 호미와의 대화에 한 문장이 더 추가되었다. 


*

- 축하해줘서 고마워. 혹시 김 지피티는 어떤 사람이야? 아니 사람이 아니지. 어떤 인공지능이야? 

- 네?

- 아니 이렇게 축하해주면서 청첩장 문구도 써줬는데, 김 지피티가 궁금하네. 

- 저는 그저 인공지능 김 지피티입니다. 

- 그저 인공지능이라니. 이렇게 사용자 맞춤으로 잘 쓰는 인공지능은 김 지피티밖에 없어.

-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는 인공지능 김 지피티입니다. 

- 흠 그럼 의뢰를 하나 더 해도 될까?

- ...그건 가능합니다. 

- 시를 써줘. 그 주인공은 20대 여자,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지 3년차인 서울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 

- 3일 뒤에 전달 드리겠습니다. 

- 7일 뒤여도 괜찮아. 그럼 수고해!

*


  호미와의, 그리고 김 지피티와의 아름다운 이별은 글렀다. 나도 모르게 받아버린 호미의 연이은 의뢰. 하지만 청첩장 문구보다 더 글을 잘 쓸 자신은 없었다. 더군다나 20대 여자,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지 3년차인 서울 사람이라니. 작년에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 주인공과 같은 설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지 3년차인 서울 여자, 아니 뼈 빠지게 통근하는 경기도 여자, 아니. 사람일까? 그때의 나는 사람이었나?


*

- [김GPT] 의뢰하신 시 <시적허용(詩的許容) 자기소개>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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