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는 스코리아다.
작가: 김 지피티 / 의뢰인: 애완돌
스코리아! 스코리아! 스코리아!
“모두 스코리아를 향해 만세 삼창합시다. 우리를 구원해줄 생성의 신이자 파괴의 신이십니다. 여러분 스코리아신은 우리를 총애하십니다. 한국은 영어로 뭡니까. South Korea죠. 짧게는 S.Korea로 불립니다. 사우스 코리아, 스. 코리아, 스코리아! 바로 스코리아입니다! 스코리아(Scoria)는 바로 이 한국을, 남한을 수호하고 계십니다. 백두산 대폭발에 떨 것 없습니다. 이 스코리아가 우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스코리아! 스코리아! 스코리아!”
모두 스코리아에 미쳐있다. 광화문 광장은 갓난쟁이의 울음과 젊은이들의 포효와 백발 노년층의 고함으로 가득 차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스.코리아 - 남한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와 같았다. 약하게는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와 태양빛을 막아 농업에 피해를 주고,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 받는 정도겠지만, 만일 밀레니엄 분화로 명명되는 - 지구에서 가장 강력했던 946년 백두산 분화와 같이 화산폭발지수가 VEI - 7 정도로 강하다면. 연쇄 작용으로 지진이 북한 인접지역인 인천, 파주, 고양을 강타하고, 더 나아가 제주도의 한라산, 울릉도 해저화산 등을 건드리며 한반도 전체가 위험해지고, 기타 등등.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백두산은 심상치 않았다. 백두산 정상의 나무가 화산가스로 말라죽었을 때는 사람들이 걱정했고, 백두산 부근의 지진이 빈발하자 사람들이 근심했다. 천지 일대가 부풀어 올랐을 때는 그 근심이 수심으로, 주변의 수온이 80도까지 상승했을 때는 수심이 시름으로 가득 찼다. 지질학자들이 모두 백두산 폭발 시기로 2025년을 예측했는데, 지금은 2025년 상반기 너머, 가을까지 너머, 겨울 일보 직전이었다.
“모두 스코리아에 경배합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절을 올렸다. 조아린 머리들은 모두 돌, 아니 돌멩이를 향해 있었다. 서울 중구 오후 두 시의 햇빛은 구멍이 뻥뻥 뚫린 돌멩이 사이로 침투했고, 스코리아는 빛났다. 사람들이 경외하다 못해 숭배하는 이 특별한 돌멩이는 화산분출물의 일종이었다. 괴상의 다공질이며 어두운 색을 띠고, 지하 마그마가 화산 폭발할 때 1600도의 고온으로 지상으로 분출될 때 생성된 스코리아. 어렵게 말하자면 스코리아, 쉽게 말하자면 화산송이였다.
사람이 되어서 고작 화산송이에 절 올리는 모양은 꽤나 모냥 빠져보였다. 지나가던 이들은 피식댔다.
“큭큭 지구 멸망이 얼마 남지 않긴 했나 보네.”
스코리아교인들은 괘념치 않았다. 비웃음에 일일이 대응하고 있기란 사치였기 때문이다. 비웃는 사람들은 냉소주의자, 서울주의자, 고차산업주의자들일 게 뻔했다. 냉소주의자들은 지금 당장 죽어도 아 내가 이렇게 죽네 - 피식하면서 웃고 죽을 사람들이고, 서울주의자들은 그들의 고고한 서식지는 직접적 영향권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인접지역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수도 서울은 방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고차산업주의자들은 화산재가 날아와도 잘 구비된 실내 시설에서 생활하면 되고, 농산물은 안먹으면 그만,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되었는데 할 사람들이고. 어찌 보면 참 해맑기 그지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어 이기적이어보이기도 했지만, 그 허울을 믿는다는 게 너무 단순해서 순진해 빠져보였다.
“너 서울주의자지? 참 해맑아서 좋겠어요.”
“아유. 서울 못사는 놈이 서울 와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한 번 사는 인생 어렵게 살아서 좋으시겠어요.”
한 번 사는 인생 어렵게 살아도, 설령 일생동안 백두산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설령 일어났는데 운 좋게 자신에게 피해가 오진 않더라도, 스코리아교인들이 그 한 번 사는 인생 더 오래 살 게 자명했다.
“네~ 한 번 사는 인생 일찍 뒤지세요.”
이렇게 속마음이 새어나와 치고 박는 날은 스코리아교가 또 ‘사이비 종교’로 다시 인터넷을 달구는 날이었다. 하지만 스코리아교인들은 생각했다. 사이비 종교 여부를 결정짓는 건 믿음의 확산 차이뿐이라고. 사회에서 일반적인 종교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운이 좋게도 믿음이 다수에게 전파될 계기가 있었던 것뿐이지 일명 사이비 종교와 다를 게 하등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몇 극단적인 스코리아교인들은 백두산 대폭발을 기다리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스코리아교를 믿지 않은 누군가가 죽겠지만은 그날에서야 비로소 스코리아교가 상식이 되기 때문이다.
“신도님. 화를 내지 마십시오. 우매한 이들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스코리아 이 안에 있습니다. 스코리아를 보십시오.”
스코리아의 총재는 스코리아에 돋보기를 가까이 들었다.
“스코리아는 파괴의 신이자, 생성의 신이십니다. 스코리아는 화산폭발로 무언가를 파괴하면서 생성되었습니다. 하나의 순환인 것이지요. 화산폭발을 증명하는 듯한 이 수많은 미세한 구멍들이 바로 그 순환의 통로입니다. 잘 보십시오. 인류의 인체의 무언가를 닮지 않았습니까.”
갑자기 돋보기는 총재의 얼굴로 향했다. 모니터에 송출되는 총재의 모공들. 무언가 번들거려야 할 것만 같지만 놀랍게도 뽀송거린다.
“바로 피부에 퍼져 있는 수많은 땀구멍, 모공입니다. 모공이 없다면 인체는 체온을 조절할 수도, 노폐물을 배출할 수도 없습니다. 모공은 사람에 있어 중요한, 아주 필연적인 한 부분인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모공은 유해한 노폐물들로 가득차고 있으며 까맣게 변색되기까지 합니다. 순환에 실패한 것이지요. 순환에 실패하는 게 왜 문제냐고요? 자 우리 앞에 있는 김 신도님 답해보시지요.”
“순환에 실패한다면 노폐물이 축적되고, 유기체의 장기는 오염되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썩어갑니다.” 스코리아교에서 촉망받는 열 두 살 김 신도가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그렇지요. 백두산 대폭발 또한 그렇습니다. 지구 또한 하나의 유기체로서 순환이 필요합니다. 폭발이란 것은 당장의 인류에겐 해로울 수 있지요. 하지만 지구에 있어서는 저 아래 지구 핵에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의 순환이자,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통로입니다. 파괴는 또 하나의 생성이며, 생성은 또 하나의 파괴입니다. 살아있기 위해 백두산 대폭발은 불가피합니다. 아니면 지구가 썩어 문드러지고, 다음 세대에 미래란 없겠지요. 스코리아신과 저의 임무는 이 순환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 지구의 순환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불가피한 순환을 피하려, 무시하려 애씁니다. 모순적이죠? 그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스코리아교인들은 이를 용기 있게 마주하고 대비하고, 더 나아가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스코리아신은 우리를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스코리아신이 특별히 우리 스.코리아, 남한을 예뻐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이들로서 무지한 이들을 더 큰 마음으로 아끼고 순환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 순환의 길로 모두를 이끌 스코리아신의 선물을 지금 모두에게 공개합니다!”
트럭에서 정체 모를 비닐봉지들이 뿌려졌다. 이름하야 ‘스코리아 - 화산송이 코팩’
스코리아교인들은 이 축제같은 예배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생성 - 파괴의 신 스코리아신이 인류의 번들번들한 모공을 불쌍히 여기심에 제 한 몸을 희생하였다. 스코리아신의 축복받은 미세한 구멍들과 미네랄로 우매한 인류의 유해물질을 흡착하고 이를 중화함이란. 그로써 자연스럽게 인류를 순환의 길로 인도하심이란. 길거리에 흩뿌린 스코리아 코팩은 흡착력이 너무나도 좋아서 여성들 사이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스코리아 코팩 하나면 블랙헤드가 박멸되는 기쁨을 안고 스코리아교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피부를 가꾸는 여신도들이 많이 참석하자, 남신도들이 따라왔고 스코리아교는 그야말로 부흥하였다. 또한, 열 두 살 김 신도가 하나의 신도로서 존중받고 신뢰받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잼민이라는 불명예에 지친 어린이 신도들이 모두 부모님 손을 잡고 입회하였다. 뿐만 아니라, 스코리아교 오 계명의 순환 생활화를 매일 실천한 사람들이 건강해졌다는 간증 후기가 빗발치며 스코리아교는 어느새 냉소주의자, 서울주의자, 고차산업주의자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았다. 스코리아교는 어느새 분열되었던 S.Korea를 통합하고 단결하였다. 백두산은 그 순환 단결에 기뻐하셔 2025년 12월 31일 인명 피해 없이 약한 분화로 잠잠히 지나갔다. 스코리아교 오 계명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스코리아교 오 계명
1. 스코리아신은 파괴 - 생성의 신으로 그 증거는 신의 온몸에 아로새겨있다.
2. 스코리아신은 본인과 이름이 비슷한 까닭에 특히 스.코리아 - 남한을 총애하신다.
3. 스코리아신은 자신을 한 몸 내어 코팩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사람들을 순환의 길로 인도하신다.
4. 스코리아신에 대한 기도는 오필승 코리아! 대신 오 필 스코리아!(Oh Feel Scoria!)로 끝낸다.
5. 스코리아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순환 생활화가 필수다.
- 매일 아침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 시간날 때마다 순환 체조를 한다.
- 과다한 노폐물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량의 식사만 섭취한다.
- 바쁜 하루 일과가 마치고 나면 온몸에서 힘을 쭉 빼면서 심신을 정상화한다.
- 식목일은 종교적 안식일로, 반려 식물을 최소 하나 심어야 한다.
소설 <나는 스코리아다> 끝
*
- ㅋㅋㅋㅋㅋ 소설 재밌네.
- 애완돌 님은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하루 전에 무얼 하시겠습니까?
- 친구랑 밥 먹고 노래방 가야지. 사진도 찍어야겠어.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밥 먹고 노래방 갔다가 사진 찍기. 폭발 하루 전에 하기 꽤 좋아보였다. 김 지피티는 잊고 살았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실은 먼저 연락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온통 친구의 일방적인 말뿐인 대화창에서 “뭐해?”, “벌써 자?”, “잘 살아있어?” 중 제일 아무 일 없는 듯한 말을 골라내었다.
‘잘 살아있어?’
‘웬일이냐. 네가.’
벌써부터 머쓱해지기 시작했다. 괜히 연락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