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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은빛처럼 은은한 긴카쿠지

사색의 길, 철학의 길

by 이솔 Sep 24. 2018

킨카쿠지와 긴카쿠지. 금각사와 은각사. 비슷한 이름 때문에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에피소드가 생겼다. 교토에가면 킨카쿠지, 금빛으로 빛나는 사찰을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었다. 네비게이션에 킨카쿠지로 향하는 주소를 입력하고, 교토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변의 풍경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당황스런 마음으로 살펴보니 내가 찾아간 곳은 킨카쿠지(금각사)가 아니라 긴카쿠지(은각사)였다. 글자 하나 다를뿐인데 서 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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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착각이 오히려 더 좋은 장면을 만나게 해주었다. 긴카쿠지에 도착한 날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스산한 날씨였다. 이런 날씨는 이끼 낀 정원과 긴카쿠지로 이어진 철학의 길에 운치를 더했다.  

킨카쿠지, 금빛 사찰은 햇살에 비쳐 반짝일때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예정대로 이날 킨카쿠지에 갔었다면 황홀한 태양 빛을 입은 금각의 모습은 아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찬란히 빛나던 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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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카쿠지가 금빛 사찰을 대표한다면 긴카쿠지는 연못이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긴카쿠지는 히가시야마 문화를 대표하는 사찰로, 정식 명칭은 히가시야마지쇼지이다. 1482년 무로마치 시대의 지배자였던 아시카가 쇼군이 세웠다. 그는 ‘히가시야마 문화’ 르네상스의 기수였다.

금박을 입힌 킨카쿠지를 부러워하여 관음전인 긴카쿠를 지을 때 건물 외벽에 금박 대신 은박으로 입히려 했다. 은을 입히려는 계획은 전쟁으로 좌절되었지만 거뭇하게 세월을 덧칠한 사찰은 수수한 모습으로 정원 속에 고고하게 서 있다. 국보로 지정된 긴카쿠는 1층은 주택이고, 2층은 관음상을 모신 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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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앞에는 후지산을 모티브로 한 모래더미 고게츠다가 있다.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달은 아름답다. 달빛이 비치면 관음전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카펫을 깔아놓은 듯 폭신한 이끼, 수령이 600년 된 배 모양의 소나무, 이런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원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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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산책하며 언덕에 오르면 교토의 시가지가 한 눈에 내다보인다. 건물들이 낮게 펼쳐진 교토의 풍경은 은빛을 닮아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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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길, 철학의 길

긴카쿠지에서 나와 좁은 수로를 따라가면 나쿠오지 신사까지 2.5km 정도 운치 있는 길이 이어진다. <선의 연구>라는 저서를 남긴 일본의 철학자, 교토 대학 교수 니시다 키타로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겼다 해서 철학의 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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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사철 꽃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봄에는 팝콘같이 터지는 벚꽃과 철쭉이 아름답다. 초여름 밤에는 철학의 길 테라노마에바시 주변에서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날아다닌다. 교토의 가을은 불꽃처럼 타오르니, 사색의 길은 화려하다. 겨울의 길은 스산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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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가쿠노미치’라 새겨진 바위에서 철학의 길이 시작된다. 길을 따라 쭈욱 걷다보면 교토의 민가와 전통적인 상점, 찻집, 잡화점들이 늘어서 있다. 냐쿠오지바시 건너편에 위치한 냐쿠오지 신사에는 수령이 400년이나 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나기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고난을 이겨내는 수호신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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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보니 슬슬 배가 고프다. 길게 이어진 길을 걸어온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길의 끝에는 300 전통을 이어온 카레 우동집이 있다. ‘히노데 우동’은 미슐랭의 별 3개를 받은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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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집은 여행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기다림에 보상하듯 카레 우동맛은 일품이었다. 조금 짭짤한 카레 우동을  바닥까지 모두 비웠으니 말이다. 유서 깊은 작은 부엌에서 교토의 깊은 맛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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