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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Apr 14. 2019

2부 1화  치료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2019년도 3개월이 훌쩍 지나 봄에 들어섰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죄절과 희망을 끝없이 순회했고 그리고 이사를 했다.  

2015년 필자가 '모씨' 어플에 작성한 글

 지낼 곳이 없어 4개월을 대학원 조교실에 숨어 살았다. 그 뒤엔 어렵게 옥탑에 세를 구했다. 여름이면 물이 새고 겨울이면 변기가 얼던 곳이었다.  

 지난 14화에서 우선 옥탑생활을 청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치안이 좋고 비교적 쾌적한 곳으로 이사를 마쳤다. 나는 식탁을 장만했다. 직접 리모델링한 주방에서 천천히 요리를 한다. 완성된 음식을 어떤 그릇에 담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이사한 집 앞뒤로 마트와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으니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는 말할 것도 없다. 주황색 스탠드와 앵두 전구도 갖췄다. 큰 책장과 책상 또한 구매하였다. 환기 후에는 공기청정기를 돌린다. 침대 옆으로 큰 창이 있어 밤공기를 맡보기에 좋다. 작은 방에는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서 영화를 본다. 집이 춥거나 덥지 않기에 식물들도 잘 자라 난다.

 이 모든 것들을 혼자 해냈음에 기쁘고 대견하다. 나는 이렇게 집다운 집에서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존재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보다 더 좋고  편리한 것들을 누려도 되는 존재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니까.

 당연한 행복들을 추구하자. 나는 우주의 아이다.



지금까지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이 과거의 울분과 이유 있는 변명들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치료 중심의 글을 쓰고 싶다.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울고 좌절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것은 일 년이면 족하다. (그렇다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제부터 내가 섭식장애와 어떻게 싸워왔는지, 싸우고 있는지 공개하고자 한다.


1. 식단일기? 식단일기!

 많은 의사나 상담사들이 식단일기를 제안하지만 내담자들은 식단일기의 치료적 효과를 의심하고 꺼려한다. 무의식적으로 객관적인 자신의 식단을 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사실상 어려운 것은 꾸준히 식단일기를 쓰는 것이지 식단일기 자체가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매번 먹은 걸 기억해서 적는 행위가 정말 도움일 될지 의문스러웠다. 적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 같았다. 내가 먹은 것들을 보며 자책하며 괴로움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식단일기를 용기 내서 공개해본다. 나에게 식단일기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내가 먹은 것들의 양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배가 부르고 오늘도 너무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식단일기를 보면 겨우 청양고추 몇 개에 김을 뜯어먹은 게 다였다. 나의 식사량을 눈으로 확인하니, 번쩍! 하는 느낌이었다.

'아, 정말 내가 아프구나. 나는 정말 적은 양을 먹고 있어' 이런 식으로 나의 비합리적 사고를 인정하고 바꿔나갈 수 있었다.


2. 미술 자가 치료.

 섭식장애를 주제로 한 책과 논문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자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 해왔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에 미술을 매개체로 자가치료 또한 시작했다.


내가 보는 나 (좌), 남이 보는 나 (우)


 미술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작업물이다. 내가 자각하는 나의 모습은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는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나를 대변한다. 외형을 뚱뚱하거나 마른 모습으로 그리진 않았지만 날씬한 모습이다. 양손을 그리지 않고 뒤로 감춰진 모습은 수동적이며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참고한 서적 : "인물화 및 집, 나무, 사람 그림에 의한 심리진단법." - 김동연, 공마리 편역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은 꽤 사실적이다. 실제로 타인이 나를 이렇게 보진 않겠지만 (일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럴 수도 있겠지만) 그려진 작품 속의 나는 거식증을 앓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고 남이 보는 내 모습이 실제 내가 자각하고 있는 모습인 건 아닐까. 볼품없이 마르고 병든 저 모습이 나라니. 뛰어가 안아주고 싶다. 혼내주고 싶다.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꾸미지 않아도 되고. 먹어도 되고. 너 자체로 소중하다고. 너 자체로 그거면 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술치료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흐른 뒤의 자화상

 점차 나를 객관적으로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웠던 말. 속상했던 말. 내가 하고 싶은 말.

 이 작업은 가족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 그 사람에게 들었던 말들 중 고마웠던 말, 속상했던 말을 적거나 표현해보는 작업이었다. 나는 가족이 아닌 지인을 떠올리며 작업을 했다. 힘이 되고 고마운 말들은 사진 속에 적힌 것보다 훨씬 많아 이곳에 더 적어보려 한다. 내가 들은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길 바란다.


실패한 너에게 지지마. 네가 믿지 않아도 난 너를 믿어. 넌 해낼 수 있어.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나는 대단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러면 또 일도 잘하고 하고 싶은 거 이루고 싶은 거 할 수 있겠지. 그러니 우선 먹어. 쌤. 너는 우주의 아이라고, 지금 당장 먹는다고 바로 찌는 것도 아니야. 너무 말라서, 지금은 너무 말라서 배가 튀어나와 보이는 것뿐이야. 예를 들면 삼다수 물통 안에 물, 아주 고요하고 가만히 있잖아. 그게 너의 몸이야. 그래야 하는 거야. 네가 누워있을 때 그냥 아무 느낌이 없어야 해. 누가 널 만지면 온전히 그 느낌을 느낄 수 있어야 해. 스스로 용기를 가지고 입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넌 충분히 칭찬받을만해. 대단한 일을 한 거야. 다 나아서 웃을 생각만 해. 쌤, 힘들고 울고, 그러면 나랑 얘기해. 혼자 그러고 있지 말고. 알았죠?  평소 아무런 느낌이 몸에 없어야 해. 어떤 고통도 심지어 간지럼 같은 것도 그래야 만약에 손이 아프면 병원 가서 손이 아파요 하는 거지. 일단 다 치료하고 나면 그다음 아픈 건 쉽게 찾아내는 거지. 그러니 그런 상태를 지금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 지금 너는 온몸이 아프잖아. 의사는 꾀병 취급하지 않아. 의사는 판단을 내려줄 뿐이야. 의원에선 네가 한 말을 듣고 주사와 약을 처방하고 2차 병원이나 3차 병원에선 지금처럼 검사를 하고 진단을 내려주고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안 아프게 해 주려는 게 의사야.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그냥 네가 널 소중히 여기고 건강한 거야. 이상한 걸로 관심받으려 하지 말고 관심 없어도 스스로  존재만으로도 뿌듯해하며 살고 널 위하는 남의 말에 귀좀 기울이며 살아.  나는 어제의 나보다 건강해졌다. 내일은 지금의 나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이렇게 믿으면서 지내. 점심때는 얼마 못 먹었지만 저녁은 더 많이 먹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더 나아질 거라고 믿도록 해. 말도 안 되는, 몸은 글래머에 배만 소말리아를 바라잖아. 내가 정은지 보여줬잖아. 살 찌우고 그렇게 되라고. 사람이 당연히 배가 있지. 굶어 죽어가지 않는 이상 그 배에 지방들이  다 온몸을 유지시켜주는 건데 배가 나온다고? 그거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사실 그냥 잠깐 먹어서  거기 음식이 머물러서 볼록해져서 그래 보이는 거잖아. 뱃가죽이 등에 붙었으니 당연히 그래 보이겠지. 배가 어느 정도 나오면 그런 건 티도 안나. 너도  다 알잖아. 근데 왜 자꾸 스스로 속여.


 이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건강해질 것이다. 매일 더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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