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수민족의 도시
우리는 종종 러시아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연방국가라는 사실을 잊는다. 러시아의 정식 국명은 러시아 연방이며 그 안에 수많은 자치공화국들이 존재한다. 카잔은 이러한 러시아의 자치공화국들 중 하나인 타타르스탄의 수도이며 러시아가 유럽지역을 넘어 시베리아 지역으로 진출하는 데에 중요한 교두보였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러시아 연방에 속해있기는 엄연히 자치공화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이곳 카잔의 중심인 크레믈 안에는 대통령 궁이 존재하고 타타르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박물관도 크레믈 주변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에 속해 있으나, 개별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돋보인다. 러시아 연방 아래 소수 민족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영유하는 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이, 카잔은 타타르스탄의 수도인데 타타르스탄은 타타르인들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타타르인들은 그들의 뿌리를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몽골제국, 그 중에서도 킵차크한국과 그들의 황금군단에서 찾고 있다. 칭기즈칸의 장남인 주치과 그의 아들 바투에게 분봉된 시베리아 지역에 세워진 킵차크 한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후 카잔 지역에서는 타타르인들의 나라인 카잔 한국이 세워졌고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4세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번성했다. 러시아인들을 정복했던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러시아에 복속된 것이다.
민족과 문화가 다르다 보니 카잔은 모스크바 지역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선 도시의 중심인 크레믈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정교회 성당도 있지만 거대한 블루 모스크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종교의 공존이 매우 흥미롭다. 다만 이 공존은 굉장히 최근에 이루어졌는데 모스크바 공국이 이 지역을 정복한 후 한동안은 이슬람 사원이 크레믈 안에 자리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반 4세의 공격에 맞서 싸운 카잔 한국의 마지막 칸의 이름을 딴 쿨 사리프 모스크는 완공된 지 10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자체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있기 때문인지 쿨 샤리프 모스크는 빠르게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러시아의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타타르인들은 오랜 세월 러시아에서 슬라브인들과 공존이 이루어져 단순히 외모로 특정지어지기는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와 생활양식 등의 공유에서 오는 동질감이 이들을 하나로 단단히 묶고 있다. 오랜 역사에서 오는 자부심이 도시 전체에서 느껴졌다.
카잔을 방문하게된 동기 중 하나는 이곳이 볼가강에 인접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명의 젖줄이며 러시아 민족의 뿌리라고 여겨지는 볼가강은 러시아의 주요 도시를 관통해서 흐른다. 이곳 카잔도 그 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볼가강을 눈에 담아두기 위해 길을 나섰다.
머물던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볼가강변이 있어 큰 부담이 없었다. 카잔역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가면 무언가 정제되지 않은 풍경들이 나온다. 그 풍경들을 지나면 볼가 강변이 나온다 사실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운 분위기다.
젊은 시절 레닌이 다녔다던 카잔 연방 대학교에 들렀다. 레닌은 이곳에서 청년 시절 수학하다가 그의 형이 당시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3세 암살 시도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여 처형된 이후 일종의 연좌제로 인하여 대학에서 제적당했었다.
카잔에 왔으니 타타르인들의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다. 이슬람 문화권이니 돼지고기 요리는 당연히 없고 주로 소, 양, 말 등의 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요리들이 많았다. 나는 그 중에서도 소고기를 주재료로 한 요리 몇가지를 주문했다.
우선 타타르식 소고기 요리를 주문했는데 담백하게 조리한 소고기와 감자, 거기에 우크롭이 더해진 요리가 나왔다. 단순하면서도 본질에 충실한 맛이다.
두번째 요리는 아주라는 소고기 스튜요리였는데 역시나 소고기와 감자가 주재료였고 토마토 베이스에 각종 향신료가 버무려졌다. 다만 어린 송아지 고기로 만들어서 그런지 고기가 매우 부드러웠다.
세번째 요리는 카잔식 만두요리였는데 만두 소의 주재료는 역시나 소고기였고 내가 이 요리를 접한 식당에서는 약간의 변화를 주어 토마토 슬라이스와 바질 페스토를 곁들여 요리의 산뜻한 맛을 더해 혹시나 있을 지 모를 고기의 누린 내를 잡았다.
요리들에 대한 총평은 기존에 접했던 러시아 음식들과 크게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였다. 아마도 오랜 세월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슬라브인도, 타타르인도 서로에게 깊이 녹아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타타르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 과자 착착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착착은 일종의 튀김 과자로 꿀 등을 더해 만드는데 한국 전통 과자인 유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타타르인들의 전통 과자로 사실 타타르스탄에서만 맛볼수 있다기 보다는 러시아 지역 어디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된 과자이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