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식의 세계로
코스 요리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언제나 메인요리이다. 메인 요리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로 단백질이 가득한 고기나 생선요리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러시아어로는 '마샤 이 리바'가 주된 재료인 셈이다.
각나라들의 대표적인 메인 요리들은 그 지방의 지리와 문화적인 특성에 기인한 것들이 많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러시아는 내륙지방이 많은 곳이기에 바다 생선보다 민물 생선을 재료로 한 요리가 많고 육고기 요리가 풍부하게 발달한 것 같다. 또한 혹독한 기후를 가진 덕에 소시지 등 보존식에 가까운 요리들도 많다. 지금부터 러시아의 특성이 묻어나는 메인 요리 몇가지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흔히 벨루가라고 하면 귀엽고 하얀 돌고래나 보드카 브랜드를 연상하기 쉽지만 러시아에서, 특히 식당에서 벨루가라고 하면 철갑상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로 유명한 나라이니 철갑상어를 활용한 요리도 맛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얄팍한 추론이었다. 추론의 결과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생선살이 입안에서 부서진다. 고급일식집에서 주는 생선조림에서 양념만 뺀 그런 맛이다. 그렇다고 마냥 심심하기만 한 맛은 아니다. 적절한 소금기가 밴 고급진 맛이다
파이크퍼치라는 이름도 생소한 생선을 접하게 된 것은 블라디미르에 있는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농어과의 민물고기더라. 쌀가루를 묻혀 튀긴 파이크퍼치의 살코기 즉, 필레는 바삭하고 씹자마자 육즙이 터져나왔다. 애초에 튀김이라는 요리방식을 선택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 효과가 예상한 것보다 더 격하게 터져나온 데에는 요리사의 솜씨가 탁월했기 때문이겠지. 같이 곁들여먹는 크림과 비트 퓨레도 맛의 다양성을 더한다.
크림과 소고기의 만남. 가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러시아의 귀족 스트로가노프 가문에서 탄생했다는 이 요리는 러시아 요리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각종 크림을 사랑하는 러시아인의 식성이 다분히 반영된 요리다. 가장 정석적인 것은 호밀빵 안에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듬뿍 담아먹는 것이다. 요리 자체가 소스에 가깝기 때문에 빵이나 감자 등 탄수화물을 곁들여 먹는다.
러시아에서 코틀레따라고 부르는 이 요리는 사실 우리가 흔히 아는 커틀렛이다. 튀김옷 덕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을 가득 담고 있어 촉촉하다. 튀김 요리의 정석같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닭고기나 돼지고기로 만드는 커틀렛은 현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소련시대 때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요리이고 커피 뿐만 아니라 각종 요리를 파는 러시아의 카페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고 마트에서도 간편식으로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물론 다른 요리들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부담이 없다.
소시지하면 독일이 가장 유명하지만 러시아도 꽤나 소시지를 많이 먹는다. 러시아식 소시지는 깔바사라고 부르는데 보통 양파 또는 양배추와 곁들여먹는다. 러시아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춥고 겨울이 긴 지역이기 때문에 소시지와 같은 보존식이 발달했다. 양고기나 닭고기 등으로 만든 소시지도 먹을 수 있지만 항상 나의 선택은 역시 돼지고기이다.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가 내 입맛에는 가장 맛있다.
연어의 주산지인 노르웨이와 가깝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연어가 저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러시아에서도 연어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며 큰 마음 먹고 연어를 주문해도 200그램이 넘는 고기 덩어리를 만나보기는 쉽지 않다. 가끔 연어가 많이 먹고싶은 기분이 들 때 가끔 주문하고는 한다. 몸에서 원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신호가 올 때. 그렇다고 엄청나게 가격이 비싼 편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고 할까. 가격 대비 배부르게 만족감 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 가격이면 다른 것을 먹지 이정도. 연어와 비슷한 송어 종류는 그래도 연어보다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연어 대용으로 찾아먹기도 한다. 연어를 주문했을 때는 비싼 연어는 아껴먹고 곁들여 나온 감자나 양배추 등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배부르게 연어를 맛보는 방법이다.
러시아 어느 곳에 가도 맛볼 수 있는 디저트는 메도빅이다. 저렴한 가격과 훌륭한 품질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꿀로 맛을 낸 케이크로 러시아 황실로부터 퍼져나간 디저트이다. 촉촉하면서도 적당히 꾸덕한 식감이 주된 특징이며 꿀과 크림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대표 디저트로 나폴레온이 더 유명한 모양이지만 러시아 현지에선 메도빅이 더 대중적이고 유명하다.
나폴레옹에 대한 승리의 맛이 너무 달콤했었을까? 나폴레옹에 대한 승리의 기억이 담긴 나폴레온 케이크는 프랑스의 디저트 밀푀유와 비슷한 외형과 맛을 가졌다. 층층히 쌓인 바삭한 식감의 페스츄리와 사이 사이 들어간 달콤한 크림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나는 메도빅 보다는 나폴레온을 사랑하지만 메도빅을 사랑하는 아내의 요청에 나폴레온 케이크보다는 메도빅을 사오는 경우가 많다. 메도빅을 파는 곳이 더 많기도 하고.
모스크바 케이크가 생긴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2015년 정도에 만들어졌으니까 1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파티시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가장 러시아스러운 맛, 최고로 모스크바 같은 맛을 구현해 낸 것이 바로 이 케이크이다. 모스크바 시내 카페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 케이크는 견과류가 가득 들어있어 씹는 맛이 있고 달콤했다. 케이크 상단에 코팅된 핑크빛 아이싱은 모스크바 케이크의 주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