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78
사람은 상대가 당연하게 느껴지는 순간, 그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조금씩 잃곤 한다.
함께한 지 고작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아기와의 시간 또한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기에 매 순간마다 감사함을 느끼지는 못하고 살고 있었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신비롭고 신기했던 신생아때와는 다르게 말이다.
아기와의 시간이 당연해진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던 찰나, 다시금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소소한 사건이 있었다. 친구가 집에 방문하여 아기와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낮잠 잘 타이밍이 되어 아기를 재우러 들어갈 때였다.
나는 그저 아기가 피곤해하기에 함께 누워서 재워주려 하고 있었는데, 아기를 더 보고 싶은 친구가 자꾸 문 옆에서 아기와 까꿍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좋은 아기는 꺅 꺅 웃으며 좋아라 방방 뛰었지만, 낮잠을 재우려던 나는 친구의 등장이 결코 반갑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끝났으려나 싶을 때 친구가 다시 또 등장해서 아기의 잠을 달아나게 했기 때문이다.
연신 눈을 부비적 거리며 이모가 또 언제 나타나나 기다리고 있는 아기에게 '우선 자고 일어나서 또 놀자!'하고 이야기해 주고, 친구에게는 이제 정말 문을 닫고 나가달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친구가 문을 닫자마자 하품을 쩍 하고, 다행히 10분 이내에 잠이 든 아기. 아기를 두고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데, 친구는 아기를 볼 시간이 길지 않기에 아기가 자는 순간마저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일 함께하는 나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렇지, 이런 매 순간순간이 사실 정말 소중한 순간이지!' 하고 다시 한번 각성할 수 있던, 그런 소소하지만 나름 뜻깊은 사건이었다.
생택쥐페리 <어린 왕자> 속,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아주 유명한 문구가 있다.
'그래, 정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바보 같은 엄마가 되면 안 되지! 찰나같이 지나갈 이 소중한 순간들을 정말 온전히 느끼고 즐겨야겠다!' 하고 굳게 다짐해 보며, 곤히 잠든 우리 아기의 천사 같은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오늘은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일흔여덟 번째 날이다.
아기의 200일 날을 함께한 친구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다. 오늘이 아기의 389일째 되는 날이니 거의 약 200일 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인 듯 이모를 한껏 탐색하고 경계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갔다.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이고 서로 장난도 주고받던 차에 아기가 졸린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기야 이제 잠깐 코코하고 이모랑 또 놀자!'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재우려고 하는데, 순간 얼마 전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침대에 누운 나와 아기, 그리고 방 문 옆에서 빼꼼하고 아기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한 친구.
아기는 또다시 신나서 이모가 있는 곳을 향해 갔지만, 이번엔 친구에게 바로 문을 닫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는 역시 10분이 채 되지 않아 잠든 아기. 거실로 나오니 친구도 아기와 함께 즐겁게 놀았는지 그새 깜빡 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나온 걸 확인하고는 '이제 아기 깨워야지~!'하고 장난을 거는 친구에게 험악한 표정으로 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친구는 결코 아니라고 했지만, 아기가 잠에서 깨길 바라는 듯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친구 덕(?)에 아기의 낮잠은 20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리고 아기가 깨어난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행복해하던 친구!
그렇게, 남편이 오기 전까지 우리 셋은 또 까르르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이어나갔다.
이렇듯 친구들은 아기를 가끔 보기에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고, 나는 매일 보고 있기에 그런 감정을 갖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나 또한 이 시간들이 당연하지 않고, 내게도 너무나 소중한- 두 번 다시없을 그런 순간들이다.
익숙함에 속지 않고 익숙함에 사랑이 더 짙어지는, 그런 사랑이 가득한 엄마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