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처에 뜬 생일 알림을 본다. 예전엔 어떤 선물이 좋을지, 어떤 말이 좋을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축하 인사를 건네도 될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먼저 망설이게 된다.
다들 바쁘고, 다들 힘들다. SNS 속에서는 웃는 얼굴과 즐거운 장면이 가득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불안과 피로가 먼저 묻어난다. 그 사이에서 내가 보내는 ‘생일 축하해’ 한마디가 기쁨이 될지, 아니면 귀찮음이 될지 알 수 없다. 하필 바쁘거나 힘든 상황일까? 갑자기 연락을 하면 대화가 이어지려나? 아니, 대화를 시작할 주제가 있던가?
생각해 보면, ‘별일 없지?’라는 인사는 언제나 관계의 온도를 재는 말이었다.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말이지만, 때로는 그 말조차 쉽지 않다. 상대방의 상황을 몰라서, 혹은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서.
한때는 이유 없는 만남도, 목적 없는 대화도 가능했다. 사소한 농담 하나로 밤을 새우며 웃고 떠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별일 없지?'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만남은 ‘필요할 때만’ 이어지고, 대화는 ‘용건이 있을 때만’ 가능해졌다. 그렇게 공백이 생기는 것에 익숙지 않아 불안했다. 허무했고, 어색했다. 지금은 익숙해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익숙해진 게 아니라 무뎌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었기에 잔잔해졌다고 하지만, 그건 살아갈수록 여러 일을 겪기에, 사적인 순간만큼은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별일 없지?’라는 인사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걱정과 무심함이 동시에 담길 수 있는 말이니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서로의 관심과 연결이 끊긴다면 절반쯤 죽어있는 게 아닐까? 관계에 애증을 품는 시기가 의외로 빨리 온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또한 쓸데없는 생각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연락처에 뜬 이름을 바라보다가, 화면 앞에서 작게 속삭인다. “별일 없지? 생일 축하한다.”
*노래: 별일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