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어때요
줄넘기는 복싱 스텝과 닮았다. 복싱 스텝을 밟을 때는 손과 발이 같은 박자에 움직여야 하고, 무게 중심을 양발 사이에서 맞춰야 한다. 발목이 삐끗하지 않게 중심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발꿈치를 들고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종아리 근육이 중요하고, 주먹으로 타격할 때는 전완근의 힘도 필요하다. 줄넘기는 이 모든 기본기를 익히기에 딱 좋은 운동이다. 그래서 복싱장에 등록하면 3개월 동안 줄넘기만 시킨다는 루머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요즘에는 줄넘기만 하겠네?"
복싱을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다. 나도 첫 수업 내내 줄넘기만 하다가 돌아갈 수 있다고 각오하고 갔다. 혹시 몰라서 등록도 3개월만 했다. 6개월을 등록하면 8만 원이 할인되지만, 줄넘기만 할 것 같으면 돈이 아까워도 그만둘 생각이었다.
첫날, 코치님은 준비 운동으로 줄넘기를 3분씩 세 번 하고 오라고 했다.
'에게, 10분?'
취미로 배우는 경우, 특히 성인이라면 '원투'부터 바로 배운다고 했다. 하긴, 요즘 세상에 3개월 내내 줄넘기만 시켜서는 재등록을 기대하긴 어렵겠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걸 생각하니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초등학생 때 줄넘기 수행평가 만점 출신으로서, 10분은 너무 짧지 않나 하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금세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알았다.
왼손이든 오른발이든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바로 줄에 걸렸다. 두 발로 땅을 차면서 팔로는 줄을 돌리려니 있지도 않은 복근이 없는 자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분명 경량 줄넘기를 샀는데, 들고뛰다 보니 사기를 당한 것 같다. 전혀 가볍지 않았다.
1라운드가 끝났을 때 내 얼굴은 잘 익은 완숙 토마토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날은 체육관에 사람이 유독 많았고, 줄넘기 때문에 숨이 넘어가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2라운드부터는 일부러 줄에 자주 걸린 척을 하며 10초마다 쉬었다.
복싱에 대한 내 사랑의 첫 번째 걸림돌은 이 줄넘기였다. 3개월 동안 줄넘기만 한 것도, 한 시간 내내 줄넘기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준비 운동으로 하는 10분이 문제였다.
한 달이 지나도록 줄넘기 때문에 체육관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코치님은 일주일이면 종아리 근육통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그건 스무 살 코치님이 삼십 대 중반의 몸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였다. 한 달 내내 종아리뿐만 아니라 오금, 허벅지, 발목을 포함한 모든 하체 근육과 관절이 아팠다. 그래도 앓아누울 정도는 아니어서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성실하게 출석했다. 분명 내 의지로 간 건데 끌려 온 사람처럼 줄넘기 30초만 지나면 울상이 됐다. '아, 내가 뭐 때문에 여기서 이걸 왜 하고 있지. 소파에서 그냥 유튜브나 볼걸.'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한 달을 딱 채우자 근육통이 사라지고 숨이 덜 찼다. 30대 중반의 몸을 과소평가한 건 나였다. 6개월이 지나면서 줄넘기가 비로소 ‘몸풀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하루 운동의 큰 관문이었지만, 이제는 손목 돌리기 정도의 준비 운동이 되었다. 3분을 뛰고도 30초를 쉴 필요가 없었고, 3라운드를 다 마쳐도 숨이 넘어가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이었기에, 힘이 붙는 게 눈에 띄었다.
처음으로 느껴 본 몸이 가볍다는 감각은 내가 복싱을 계속하는 힘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팔에 힘을 주기도 전에 줄이 넘어가고, 발이 저절로 줄은 넘었다. 땅에 '쿵'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천장으로 '콩'하고 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어느 화요일 저녁, 잠도 잘 자고 점심도 잘 먹은 날, 문득 '조금 더 높이 뛰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끝에 힘을 주어 바닥을 찼다. 줄이 쌩쌩 돌았다. 2단 뛰기 성공이었다.
선수반 학생들이 2단 뛰기와 2단 가위 뛰기를 현란하게 해도, 나는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년 전에도 발등과 이마가 닿을 정도로 몸을 반으로 접어야 2단 뛰기 열 개를 할까 말까였다. 삼십 대 중반의 몸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6개월 넘게 줄넘기를 하며 주인도 모르게 전완근과 종아리를 단단히 키우고 있었다. 괜히 어른이 '쌩쌩이'를 연습하는 게 민망해서, 그 뒤로 학생들이 없을 때마다 꾸준히 연습했고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스물다섯 개다. 요즘에는 2단 뛰기 개수로 그날의 컨디션을 잰다.
<복싱 어때요>의 첫 초안을 쓸 때까지만 해도 스파링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파링은 지금까지 배운 복싱 기술을 가지고 몸으로 하는 수싸움이다. 나는 자세가 좋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지만 이기겠다는 투지가 없고 싸움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스파링은 내가 지금 할만한 게 아니라고, 나중에 도전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몇 편 쓸수록, 스파링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못해서 쩔쩔매는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피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자, 오히려 스파링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최대한 쩔쩔매보지 뭐. 못하더라도, 못하기 때문에, 복싱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못한다고 브레이크를 걸었던 일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에만 품었던 일이 몇 개 떠오른다. 브런치 작가 신청, 퇴사, 결혼, 복싱. 자격 조건에 나이, 직업, 혼인 여부는 상관이 없지만 나는 혼자서 벽을 세우고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줄넘기는 지금도 체육관에 가면 10분씩 한다. 시작하기 전에 여전히 한숨부터 나오지만, 막상 뛰기 시작하면 내 몸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내가 기억하는 나보다 가볍게 뛰는 걸 보며, 뭐든 해봐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나는 내가 날달걀인 줄 알고 몸을 사렸는데, 사실은 삶은 달걀이었다. 껍질이 깨져야 속살이 드러나는 것처럼, 나도 부딪히며 나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