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오늘 죽는다. 다음날은 내게 없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잊혔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다음 모든 행동이 기억 속에서 살아났다.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길은 없다. 어떻게 자신의 모든 행동이 예측된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기억을 좇아 침대를 벗어났다. 아내는 잠들어있다.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새벽 조깅을 하려고 맞춘 6시 알람 덕분에 창문 밖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다.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창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멀리 한 두 개 별빛이 반짝인다. 생의 마지막 날 나는 어떤 일을 했을까? 나는 러닝을 하기 위해 러닝 벨트를 찾으러 서재에 갔다. 그리고나서 한겨울 추위에 밖에서 달리기 위해 구매한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경량 패딩 조끼를 찾기 위해 옷방에 갔다. 그러다 순간 이게 무슨 짓인지 싶었다. 마지막 날인데 어떻게 한가하게 달리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기억에 오늘 나는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달리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그것이 오늘처럼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단순히 추워서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그것은 또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히 마지막 날이라는 예감만이 하늘 위를 떠도는 독수리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시 방안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하긴, 마지막 날인데 잠이 올 리가 있을까? 예전에 미국 교도소에서 사형 전날 사형수들이 원하는 특식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폐지되었는데, 대부분 음식을 먹지 않아서였다. 잠을 자는 것은 내일이 보장될 때만 가능한 일인가 보다.
뜬 눈으로 소파에 누웠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1시간이 지났다. 생각해 보니 금요일이다. 어쨌든 특별히 할 일도, 삶을 정리할 마음의 준비도 없기에 별수 없이 출근을 하기로 했다. 출근 준비를 마쳤다. 옷을 입는데 수의를 대신해 평소 잘 입지 않는 정장을 입어야 할지 망설였다. 가슴 한편에 다음날 이어질 삶의 기대 때문이었을까? 평소 입던 대로 편한 블루종을 걸쳤다. 하지만 조금은 격식을 살려 스트라이프 무늬 폴로셔츠, 치노팬츠를 입었다.
출근하기 전 아내가 깨어 있는지 살피러 안방 문을 살짝 열었다. 그녀는 한편으로 돌아누운 채 잠들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집 밖을 나섰다. 오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가장 급격한 삶의 변화를 느끼겠지만 미리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나가려는 찰나 이중주차를 해놓은 누군가의 차를 발견했다. 평소와 같으면 욕을 했을 텐데 군말 없이 우측으로 차를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이러니하게 인생에 여유가 생겼음을 느꼈다. 회사 사무실까지 가는 데는 10분이면 족하다. 인구가 많지 않은 지방 소도시라 차는 막히지 않는다. 늘 가던 익숙한 풍경이지만 진부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새롭게만 느껴진다.
사무실 빌딩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익숙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닫힌 뒤 다시 열렸다. 익숙한 복도, 출입문을 지났다. 직원 중 일부는 이미 출근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 자리에 앉았다. 조금은 안도했던 것 같다. 그때쯤 내일도 어김없이 내 삶이 이어질 확률에 대해 생각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