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나무(2/2)

by pathemata mathemata

꿈에는 붉은 털의 원숭이가 남문 앞 버드나무에 앉아있다가 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동이 트기 직전 집을 나서 버드나무 밑을 파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원은 미친 사람처럼 맨손으로 땅을 팠다. 그 사이에 동이 트고 닭 울음이 들려왔다.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핏방울이 맺혔다. 그러다 무언가 감각이 사라져 가는 손가락에 걸렸다.


뚜껑이 달린 오래된 작은 백색 도자기 단지였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원은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대관령을 그린 지도가 있었고 아래에는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대관령 천년 묵은 소나무 아래에는 일 년에 1번, 한 사람에게 보이는 약초가 있는데 이를 8일간 달여 먹으면 어떤 병도 낫는다."


원은 기쁜 마음에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제가 약을 구하러 오겠습니다."


"의원도 구하지 못하는 약을 네가 어찌 구한단 말이냐. 날이 몹시 추운데 괜히 몸 상하게 하지 말아라."


"제 기도가 통했는지 남문 버드나무 아래서 우연히 묘초지도를 발견해 대관령에서 약초를 구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백한 어머니의 얼굴에 희미하게 밝은 빛이 잠시 감돌다 사라졌다.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가 옆집에 어머니를 살펴드리도록 당부해 놓을 테니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원은 자신 혹은 스스로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바로 두고 갈 수 없었다. 하룻밤을 보낸 후 새벽에 봇짐을 싸고 출발하려고 했다.


"원이 있느냐?" 늘 그를 채근하는 포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온몸을 뒤덮어 그는 흡사 눈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어쩐 일이오?" 원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지금 남문에 가봐야겠다. 담장이 밤새 눈이 쌓여 무너져내렸다."


"나는 지금 가보아야 하오." 원이 차갑게 말했다.


"네 이놈! 당장 따라가지 않으면 너뿐만 아니라 니 어미까지 요절이 날 것이다."


원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속을 삭인 채 묵묵히 포졸을 따라갔다. 남문에 도착해서 보니 담장은 쉽사리 보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귀퉁이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원의 다리가 살짝 힘이 풀렸다.


남문을 고치면 다음날 다시 허물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페넬로페가 밤새 짜놓은 수의를 풀어 구혼자의 청혼을 물리치듯 한 달이 흘렀다. 어머니의 병세는 그 사이 더욱 깊어졌다.


눈이 내리기를 그쳤다. 남문 보수작업도 마무리되어 가도 좋다는 관아의 허가를 얻었다. 원은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으나 이미 병세가 심각해 말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원은 대관령 옛 고개를 쉬지 않고 오른 뒤 지도에 그려진 소나무를 찾기 위해 온 산을 뒤졌다. 그 사이 겨울에서 봄이 되었고 다시 시간이 지나 5월 단오절이 되었다. 원은 제대로 씻지도 못해 그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원은 어느 날 그동안 보지 못한 수령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소나무를 발견했다. 그 아래에 있는 약초를 찾았다. 아니, 찾은 것 같았다.


왔던 길을 되짚어 집에 돌아왔다. 집 앞에 이르자 대낮인데도 적막이 가득했고 못 보던 흙무더기가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은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 섰다. 원의 기척을 들었는지 옆집 할머니가 뛰어왔다.


"자네, 이제 오면 어떡하나. 자네가 떠난 지 한 달 만에 자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네. 우리 집도 남의 초상 치를 형편이 제대로 못되어 겨우 마당에 묻어 두었네."


원은 가져온 약초를 꺼내 할머니에게 사례했다.


"어머니를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약초이니 중병 생기면 쓰시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되었네."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떠났다.


원의 표정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부터 그는 남문 성을 보수한 대가로 약재와 관련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원은 대관령에서 구해 온 약초를 한약방에 판 돈을 밑천 삼아 약재상을 열었다. 남은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집안 딸을 골라 혼례를 올렸다. 그녀의 나이는 14세였고 원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렇게 원은 남문 앞 버드나무 덕분에 비로소 결혼할 수 있었다. 매년 그는 정성스레 제사를 지냈다. 반면 집 한편에 있는 어머니의 무덤의 흙무덤에는 묘석조차 없었다.


속절없이 사계절이 지나가고 버드나무 앞 남대천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원도 죽고 그 자손들로 세월은 이어졌다. 여름 어느 날 버드나무에 벼락이 내려 가지가 부러졌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원숭이 형상을 띄었다. 나무에 매해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던 원이 환생한 것이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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