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남대천의 버드나무인 원숭이 나무에 얽힌 설화를 각색함.
원(猿)은 강릉읍성의 남문을 관리하는 사내이다. 매달 닷 푼의 삯을 받고 관아에서 비정기적으로 관리들이 하기 싫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닷 푼의 돈을 안 받고 농사일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손재주가 좋다는 이유로 입소문이 퍼진 것이 화근이었다. 원은 가끔 못쓰는 장작으로 못 쓰는 나무로 책을 읽기 위한 탁자나 같이 사는 어머니를 위한 소반 등을 만들어 쓰곤 했다. 이웃이 원의 집에 놀러 왔다. 그 정교함을 칭찬하다가 마을 이방의 귀에 이야기가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원은 쉬는 시간에 취미로 했던 목공예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원은 노모와 함께 사는 집 앞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장마철 비에 읍성 남문 담장이 허물어졌다고 포졸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자네가 지난번에 보수했는데 왜 또 무너진 거지?"
"비가 세차게 내리면 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 달만 벌써 세 번째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자네에게 삯을 더 줄 순 없어."
원은 더 받을 수 있는 돈도 없는데 밭일도 못하고 불려나가는 신세가 원망스러웠다. 하릴없이 일손을 멈추고 닷 푼의 일을 마치기 위해 포졸 뒤를 따랐다. 오전에 시작한 담장 보수작업은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한 명의 일꾼만 더 붙여주었다면 이렇게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텐데, 그에게 허락된 것은 오늘 내 끝내지 못하면 곤장을 맞을 것이라는 서슬 퍼런 재촉뿐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원을 맞이했다. 원의 어머니는 평민 출신으로 14살의 나이에 아들을 낳지 못한 양반가의 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원이가 2살이 되던 해 정실부인이 기어코 아들을 낳고 말았다. 더 이상 그 집안에 필요가 없어진 원은 여전히 어린 나이의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쫓겨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생부는 지금의 텃밭이 딸린 집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원의 나이가 지금 약관의 나이가 되었으나 어머니는 재취를 할 수 있을 만큼 아직은 젊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양반가에서 한 번 시집을 간 자부심을 밑천 삼아 자신을 먹여 살릴 남편 없이 긴 세월 동안 수절을 하며 원을 부양했다. 원 역시 그런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과거 공부와 같은 입신양명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저녁 차려놓았다."
어머니는 아들과 겸상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에 원은 여전히 양반 댁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비에게 버려진 서자일 뿐이다.
보리밥과 곤드레 나물, 된장국이 주식인 식사를 마친 원이 자신이 손수 만든 소반을 들고나와 주방을 향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하는 법이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가 원에게 작심하고 한 소리 했다. 그녀는 매번 관아 일로 불려나가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담장은 무너집니다. 설령 내가 보수를 잘 해놓더라도 누가 그 공을 알아줍니까? 일이 없어졌다고 트집 잡아 품삯을 치르게 다른 잡스러운 일을 부리겠지요."
원은 어머니에게 힐난했다. 어머니는 그저 듣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시간이 흘러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는 백로(白露)가 찾아왔다. 원의 어머니는 일교차가 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 원은 어머니는 젊기에 며칠 조심하면 나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원이 관가에 불려나가는 날과 겹치면서 어머니는 그의 몫을 병행하여 무리하게 일을 했다. 때늦은 가을비를 맞아가며 일한 탓에 결국 원의 어머니는 밤새 고열에 시달려 사경을 헤매었다. 다음날 원은 농사일을 팽개치고 이웃에게 수소문한 끝에 아침 댓바람에 읍내에서 병을 가장 잘 다룬다는 의원을 찾아갔다.
집과 의원을 겸하는 초가집 아래에서 의원을 찾으니 50대로 보이는 꽤 살집이 있는 사내가 툇마루 아래 앉아 있었다. 그는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이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당장 우리 집으로 오셨으면 하오. 우리 어머니가 중병에 들었소."
"내가 오늘 오전에 예약이 있을 텐데."
"달라는 돈 다 드릴 테니 어서 왕진해 주시오."
원은 비대한 의원을 거의 끌다시피 하여 자신의 집으로 인도했다.
어머니는 그새 병색이 더 완연하여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의원은 기침소리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어머니의 젊은 안색을 보고 이내 화색이 돌아 거침없이 손목을 잡고 진맥을 했다.
"폐병에 걸린 것 같네만."
숨죽이며 기다렸던 원에게 그는 사망 선고와 같은 진단을 내렸다.
"나로서는 방도가 없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요양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네. 그것도 목숨을 장담하기 어렵네."
"그래도 약재라도 처방을 해야 하지 않겠소?"
"내가 약장사를 하려고 의원을 한 것은 아니네. 괜한 돈 들일 생각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걸세."
"내가 문지기를 하여 관가에 매인 몸인데 어머니를 어떻게 다른 곳에 모신단 말이오?"
"그건 내 알 바 아니니, 이만 가보겠네."
원은 무성의한 처사에 분노하여 한참을 의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웃들이 소란을 듣고 달려들어와 원을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사내는 흙바닥에서 뒹굴었을 처지였을 것이다.
시간이 또 얼마간 흘렀다. 어머니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이제 잦은 기침에 객혈을 하였다. 원이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지만 점점 야위어갔다. 어떨 때는 처녀 같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이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병자의 모습이 되었다.
그가 일하는 읍성 남문 앞에는 오래된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무성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복과 건강을 위해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다. 버드나무 앞에는 남대천이 강릉을 남북으로 유유히 가른 채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원은 관아에 일이 없는 날에도 버드나무 앞에 들러 기도하는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게 100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날 밤 원은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 생생하고 괴이해서 원은 새벽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