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은 미영에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방금 배송기사의 문자를 받고 현관문 앞에 있는 얇은 비닐봉지의 포장을 뜯고 세일가를 적용한 러닝용 티셔츠를 입기 위해 상의를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벗어던졌다.
민혁은 사진을 찍히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상체는 태닝숍에서 태닝한 것이 아닌, 살갗이 보기 흉하게 울긋불긋 탔다. 심지어 피부 조직의 일부는 화상 자국이 아물어가면서 마치 때처럼 너덜거렸다. 일부는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미영은 민혁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았다. 블로그를 쓰는 것이 민혁의 긱(geek, 부업) 임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녀와 그가 같이 살아간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민혁은 자신의 핸드폰을 미영에게 건넸고, 미영은 그것으로 사진을 찍어 그에게 돌려주었다.
둘은 집에서 저녁을 해먹고 유튜브와 <나는 솔로> 같은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방에 불은 꺼졌지만 두 개의 불빛만 오징어잡이 배처럼 명멸하고 있다.
그때 민혁이 짧게 탄식했다. "아." "뭐 때문에 그러는데?" 미영은 반쯤은 동거인으로서 의무감에 반쯤은 호기심에 민혁을 비추는 불빛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정말 늙어버렸네." 민혁은 미영이 찍어준 사진을 보고 분명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녀는 살짝 장난스럽게 그에게 답했다.
"어차피 잘생긴 적도 없었는데 무슨 상관이야?" 민혁은 셀 수 없이 여러 번 미영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괜히 화가 조금 났다. "아니, 내가 그냥 나를 동정하면 안되는 거야?"
사실 1년 전쯤 민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다가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자기 연민이 최악이라고 디스 했기에 자신의 특기이자 변호 도구인 그것을 버리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 순간 민혁은 이상하게 자신이 비참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반면 미영은 자신이 부탁받아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성심껏 찍어준 사진으로 늙었다고 투덜거리는 그가 못마땅했다.
"나는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존감이 부족해서라고 봐. 피부과 시술받으려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 필러, 보톡스, 라주란, 인모드를 받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텐데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할 거란 말이지. 마치 필터 낀 인생을 사는 셈이지."
민혁은 미영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내가 노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능이 떨어지지 않아."
더 이상 미영은 민혁의 항변에 대꾸를 하지 않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혁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해 다시 한번 읊조렸다.
"늙어가는 것은 죽어가는 과정이야. 그걸 슬퍼하는 게 잘못된 건가?"
물론 민혁은 미영을 보진 않고서 말했고, 그녀 역시 그에게 이렇게 다시 단호하게 답변했다.
"넌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약해."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가 뭔데? 동어반복 아닌가?"
미영은 민혁에게 자존심(pride)과 자존감(self-esteem)의 차이를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존심이 세기에 미영은 이 설명으로 그의 자아를 더 이상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영은 평소보다 빨리 자신의 핸드폰 불빛을 끄고 잠을 청했다.
민혁은 미영보다 평소보단 일찍 잠들지만 그날만은 그녀보다 조금 늦게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날이 밝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민혁은 어제 미영이 찍어준 사진을 블로그용으로 편집했다. 보기 부끄러운 자신의 얼굴과 남루한 의상을 걸친 하반신을 도려내어 글을 포스팅했다. 미영은 언제부터인가 민혁의 블로그에 가보질 않는다. 그리고 민혁도 미영에게 그의 글을 리뷰할 것을 부탁하지 않는다.
민혁에게 스마트폰 알람이 왔다. 그가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다.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올리지만 인기가 없어 이런 일은 굉장히 드문 편이다.
댓글은 단 한 단어였다.
"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