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아래 책방을 만나다
4월, 햇살 좋은 오후.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위험한 봄날.
이웃 미용실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동네는 침묵 속에 빠져 들었고 새의 그림자만 지상에서 날고 있었다. 10평 미만의 작은 원룸에서 국어 교습소를 운영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었던 나. 아이들은 바깥의 햇빛보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배달 음식을 먹으며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오늘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목울대까지 바닷물이 밀려오는 듯했다. 바깥 창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았다. 며칠새 개나리는 듬성듬성 노란빛을 잃어가면서 조금씩 지기 시작했고 은행나무는 공중으로 얇은 초록의 잎사귀를 점처럼 내밀며 저 혼자의 봄을 누리고 있었다. 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고 가끔 까마귀 소리가 전봇대 위에서 들렸다. 이제 뭘 해야 할까? 나는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마침 고양이 밥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으로 나와 길 건너 있는 다이소를 향했다. 그런데 목련꽃이 진 나무아래를 지날 때쯤 갑자기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때 그 생각이 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길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두운 망각의 저편에서 사금파리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반짝거렸다. 그것은 이 근처에 책방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책방이 있는 방향으로 걸으며 잠시 생각했다. 임대료도 비싼 이 지역에서 돈도 되지 않는 반자본주의적 책방을 연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책방 창업을 꿈꾸었다. 어딘가를 여행하면 꼭 동네 책방을 찾아 다니며 공간이 주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탐닉했다. 국내 이름난 책방을 틈틈이 찾아다니며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생각만으로 머물 뿐 현실에서는 점점 멀어져 가는 공상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책방을 열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자기변명과 우유부단함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미적미적거렸는데 오만에 가까운 용기를 발휘하며 책방을 연 사람이 있다니 정말 궁금했다. 나는 구불당에서 신불당으로 넘어가는 횡단보도를 지나 얼마쯤 걸어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꺾자 파란 봄풀들이 우거진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공터 옆에 한 건축회사의 광고판이 걸린 5층 건물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책방은 이 건물의 3층에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자 ‘가문비나무아래’라는 간판이 은갈치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가문비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궁금했다. 3층으로 올라가자 유리문 하나가 흰 커튼처럼 서 있었다. 유독 노란빛이 환하게 비추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호 리본이 큰 창문에 수직으로 걸려 있었고 개나리 빛을 띤 작은 노란리본이 방문자들이 적은 추모지와 함께 벽면에 붙어 있었고 어디선가 앵무새 소리가 들렸다.
꽤 넓은 공간이었지만 그다지 책은 많지가 않았다. 마치 등뼈만 남은 고래의 텅 빈 몸처럼 느껴졌다. 그 몸의 안쪽에서 나무향이 났다. 편백나무로 짠 책장이 죽어서도 산 것처럼 일렬로 서 있었다. 종이가 된 나무와 책장이 된 나무가 서로 만나서 책방이 되었다.
천장은 높았지만 책장은 낮아 벽면에 여백이 많았다. 백열 형광등과 롤러등이 듬성듬성 나무 바닥을 비추고 나무 테이블 위에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 위쪽으로 '책방지기의 벗들이 가문비나무아래로 오신 분들께 권하는 책‘이라는 책방지기의 손글씨 팻말이 공중그네를 타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서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성찰의 깊이와 넓이 산문’, ‘언어예술의 극치 시’, ‘빈곤과 불평등’, '영성과 깨달음’, '생태와 환경' 등의 주제별로 분류하여 북큐레이션을 해 두었다. 자신만의 책진열은 책방지기의 풍성한 독서력을 드러낸다. 물론 최종목적은 판매일 것이다. 나무의 살이 흩뿌려진 종이에서 향이 계속 풍겼다. 정말 가문비나무아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새장 속의 파란 앵무새는 날개를 접고 검은콩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특별히 찾는 책이 있으세요?
어느새 고양이 걸음처럼 조용히 다가 선 책방지기가 내게 물었다. 잔뜩 웃음을 머금은 책방지기는 단발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며 말을 건넸다.
-그냥 구경 왔습니다.
나는 무뚝뚝하게 짧게 말한 후 창가 쪽 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또 물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짧은 질문과 짧은 대답 속에 앵무새는 좁은 새장 속을 푸드덕거리며 날갯짓을 했다. 나는 에세이 코너에서 박연준의 산문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뽑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책방지기는 또 빙그레 웃으며 책 계산을 한 후 방문 기념이라며 책갈피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이어서 또 말을 붙여왔다. 책방에는 단둘뿐이었다.
- 근데 실례지만 무슨 일 하세요?
- 뭐 얘들 가르쳐요. 국어를.
- 아 그러세요. 어디 학교에서 가르치세요?
- 아니 저는 학교가 아니고 학원에서....
- 저랑 같은 업종이네요. 어디서 하세요?
- 뭐. 길 건너 불당초 앞에서 조그맣게 해요
그렇게 처음 방문한 책방에서 두서없이 말을 주고받다가 문득 고양이 밥 생각이 났다. 다시 유리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자 책방 바로 옆에 통유리창이 달린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언제 따라 나왔는지 책방지기는 문 밖에서 말을 건넸다.
- 여기는 제가 하는 ‘샘과 나무 국어학원’입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책방지기에게 또 뵙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벌써 오후의 햇살이 어느새 지상으로 쓰러지며 검은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 푸른 앵무새 소리가 봄바다처럼 귓가에서 넘실거렸다.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 불모의 시대에 신기루 같은 책방을 연 책방지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