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바다에 닿을 것을 알기에
강의 유언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 일이 우리를 덮쳤을 때 나는 그저 우리가 빨리 죽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미약하게나마 붙어있는 이 숨결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던 내게 괜찮아. 우린 함께하고 있잖아-라고 너는 말했다.
그때 그 말을 하던 너의 목소리엔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이 우릴 덮친 사실보다도 너의 이상하리만치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서웠다.
너의 목소리에 담긴 그 차분함은 마치 포악한 사자에게 목을 물려 숨이 끊어지고 있는 작고 여린 사슴의 미약한 한탄처럼 들렸고, 나를 향해 웃어 보이던 너의 눈동자에서 생의 의지를 포기해 버린 듯한 무서운 결심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우리를 덮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사라졌다.
맑고 푸르렀던 너의 기나긴 머리칼은 시커멓게 변했고 연약하지만 활력 있던 너의 눈동자는 푹 꺼져버렸다.
하늘을 닮았던 네 푸른 눈이 꺼져버리기 직전에 너는 내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사라지거든 그들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아프고 분하더라도 그저 가련하게 바라봐달라던 너의 유언처럼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내 몸이 조금씩 갉아먹히더라도, 그러다가 결국엔 사지가 찢겨나가더라도 나는 끝까지 그들을 가련하게 여기며 생을 이어갈 것이다.
네가 늘 하던 말이 있다.
우리는 결국 바다에 다다를 것이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새하얀 문장의 힘을 믿는다.
사라져 버린 너와 죽어가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바다에 닿을 것을 알기에 나는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