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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Dec 30. 2022

크레아토르

신의 서광


나는 늘 그렇듯이 인적이 가장 드물고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시간에 집을 나섰다. 초봄의 새벽은 여전히 차가운 냉기를 품고 있어 온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그 냉기가 좋았다.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을 느낄 때 좀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더 강렬한 감촉이라고 해야할까.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순간마다 살을 에는 고통이 때론 모순적이게도 반가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역시나 오늘도 이 시간, 이 거리엔 그 누구도 없다. 가로등도, 고양이도, 하다못해 그 많고 많은 CCTV도 이 거리에선 찾아볼 수 없다. 철저하리만치 조용한 공간을 요즘엔 찾아보기 힘든 만큼 이런 공간을 오랫동안 찾아왔다. 눈에 밟히는 움직임이 없고 오로지 짙은 어둠만 자욱한 이 거리와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차가운 입김이야말로 내겐 진정제나 다름없다.




어둠 속을 눈으로 한참을 더듬다가 이쯤이다-싶은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발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저 유리 조각이겠거니-하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눈을 뜨나 감으나 캄캄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눈을 감는 행위는 마치 하나의 의식 행위와도 같다. 과거 주술사들이 재물을 바치기 위해 치렀던 일련의 과정처럼 이것 역시 내겐 일종의 의식적인 행위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는다. 날 감싸고 있는 주위의 캄캄함이 천천히 내게 침습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눅눅하면서도 비릿한, 하지만 약간의 청량함이 맡아지는 까만 공기가 코를 타고 폐로 들어와 몸 속을 헤집는다.




그렇게 한참을 온 몸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르고 나면 어느새 공기의 냄새가 달라진다. 동이 튼다. 온갖 소음과 인위적인 것들로 가득찬 세상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나 역시 몸을 일으킨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쪽 발바닥에 박힌 유리조각이 더 깊이 살갗을 파고든다. 그 날카로운 감촉이 점점 강해질수록 오히려 더 세차게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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