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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Aug 20. 2022

고통은 나의 전유물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하늘이 맑았다. 하늘이 흐렸다면 더 울적했을까, 그럼 하늘이 맑아서 다행인걸까-라는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며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보면, 두 눈에 가득 담긴 파란 하늘이 각막 안으로 스며들어 정맥을 타고 붉은 피와 뒤엉키곤 했다. 파랗고 빨간 액체가 심장에 닿으면 헉-소리와 함께 숨이 막혔다.

평온하고도 끔찍한 고통이 비명을 내지르게 만들었지만 그 비명에는 소리가 없어 무섭도록 고요한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밖으로 내지르는 비명이 아닌, 안으로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고통을 토해내는 것이 아닌, 꾸역꾸역 삼켜서 깊은 곳에 담아 까맣게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고이 모셔두었다.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사라지고 싶을 때 몰려드는 무력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이자,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다. 그와 함께 찾아오는 고통은 죽어가는 나무의 껍질이 쉬이 벗겨지는 것처럼 살가죽이 쩍쩍 갈라지며 벗겨지는 것만 같은 생생한 감각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 무력감과 고통이 주는 느낌과 감각만큼은 당신이 아닌 나의 전유물이어야 한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안겨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함은 그것에 익숙한 나만이 느껴야만 한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한 고통은 나의 것이다. 사라지거나, 혹은 살아지거나. 나는 전자의 고통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으니 당신은 사라지고 싶을 때, 살아는 것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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