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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21. 2020

모범생의 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동생의 쓴소리, ‘재미가 가장 중요해, 그러니까 일단 하기나 해!’

----여기서부터는 미리보기만을 제공합니다---


5월의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씩씩대며 집에 돌아와 동생의 방으로 제일 먼저 쳐들어갔다. 가방을 쿵 소리 나게 바닥에 내동댕이친 다음, 동생의 침대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은 매우 불청결한 상태였다. 동생은 옆 책상에서 전시 작업을 하다 말고 놀란 눈으로 '뭐야'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 왜 기분이 안 좋지.



넋 나간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불편한 기분을 뱉어냈다. 의욕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여러 개 듣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다 괜찮았는데 문제는 바로 '책 쓰기 수업'이었다. 출간 기획안 합평 시간이 영 부담스러웠다.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사람이 출간을 목표로 하는 거창한 수업을 들었으니 질릴 만도 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차별화된 소재로 편집자들의 눈에 확 띌만한 책을 기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내 눈에는 꽤 흥미로운 기획안이었는데, 강의를 하시는 작가님께서 '이런 건 책으로 내기에 너무 일반적인 소재다', '작가가 셀럽 정도는 되어야 팔릴 만한 책이다'라고 말했을 때는 조금 좌절스럽기까지 했다. 1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듣는 시간이 슬슬 괴롭게 느껴졌다. 동생은 녹아버린 마시멜로처럼 침대에 늘어져 있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합평 시간이 원래 그렇다고 자신도 미술 전공 수업시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평가하는 사람도 취향이라는 게 있잖아. 근데 그렇게 평가받다 보면 내 스타일이 점점 없어지고, 평가하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니까. 작품에 개성이 없어질 걸?"


생각해보니 그랬다. 수강생들이 작가님의 피드백을 듣고 나서 다음 주에 수정해서 들고 오는 글이나 기획안은 훨씬 매끄럽긴 했지만 어쩐지 저마다의 개성이 조금씩 깎여 있었다. 나 또한 아니라고는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의견이 다를 수 있어. 그 합평 수업을 꼭 들어야 돼? 전문가의 인정이 꼭 필요해?"


문득 동생의 그 말을 듣자 내가 아직도 모범생의 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수가 되어서까지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우선 어딘가에 소속되어 배우려고 했고, 권위자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다. 이왕 백수가 된 거 좀 더 특색 있는 길을 걸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또 하던 대로 하려고 했구나 싶었다.


“언니가 30년 동안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당연해. 근데 지금 언니한테 가장 필요한 건 합평이 아닌 것 같아. 뭔가를 지속하는 힘은 '재미'야. 그게 가장 중요해."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읽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가 글을 쓰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뭐 그런 거장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재미'가 무엇인가를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건 틀림없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해봐. 글을 쓰고 싶으면 브런치 같은 플랫폼에 우선 글을 올려봐. 지금 프로가 아닌 상태에서 쓰는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


“맞아. 아마츄어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지.”


TV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사운드 클라우드 같은 플랫폼에서 신인 뮤지션이 발굴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대형 기획사의 손을 거쳐 정식 데뷔를 한 모습을 보면 어쩐지 세련돼 보이긴 했지만 예전의 힙한 느낌이 사라져버려 너무 아쉽지 않았던가. 전문가의 책 쓰기 수업에서 얻어가는 것도 분명히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의 좋은 점까지 깎아 없애 버리거나 재미를 잃어버릴 만큼 압박으로 느껴지게 두면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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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creativestock, 출처 Pixabay

* 커버 출처 : © claritycontrol,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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