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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붕어빵 오픈런 한다

붕어빵과 출석률의 상관관계

by 피터의펜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큰길 따라 5분만 걸으면 나온다. 그래서인지 더 안 가고 싶어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차로 데려다줘야 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 하고 투덜거린다.


이 고비만 넘기면 또 잘 다닐 걸 아는데, 막상 매일 저녁마다 이런 말 들으면 마음이 살짝 약해진다.


이해는 된다. 여름방학도 짧았고, 개학하자마자 바로 2학기로 들어가서 11월쯤이면 체력이 바닥날 때다. 3월부터 지금까지 학교에, 숙제에, 학원까지 꾸준히 버틴 걸 생각하면 사실은 칭찬을 해야 맞다. 그렇다고 마냥 공감해 주고 학원을 쉬게 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보내야지.


태권도의 최대 장점이 뭐냐면 관장님이 직접 운전해서 애들을 태우러 온다는 거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보다 든든한 시스템이 없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또 지루할 수 있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친구들을 한 명씩 태우고, 그다음에야 도장에서 내리는 그 루틴이 몇 년째 똑같으니 이제는 '버스 타는 맛'도 안 나는 거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이가 부탁을 했다.

"아빠, 학원에 같이 가주면 안 돼? 끝날 때도 데리러 와주고. 너무 심심해서."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아이의 지친 표정을 보고는 알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안 해줄 이유도 없었다. 태권도장까지 거리가 먼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알았어, 이번 주는 아빠랑 같이 가자."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꽤 성실하게 동행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길, 똑같은 편의점을 지나서 학원까지 갔다.


그런데 오늘.

어제만 해도 없던 게 생겨 있었다.

편의점 앞 자투리 공간에,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붕어빵 입간판이 서 있었다.


"어? 이거 원래 있었어?"

"아빠, 진짜 없었어. 오늘 처음 봤어."


우리 둘 다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그 말인즉슨, 오늘부터 장사 시작한 붕어빵 가게였던 거다. 그런데 이미 줄이 길었다.

보행 신호가 유난히 오래 걸리는 횡단보도 앞이라, 평소 같으면 다들 찡그린 얼굴로 서 있는데 오늘은 이상했다.


한 손에 핸드폰, 한 손에 지갑을 든 사람들 전부가, 붕어빵 냄새 쪽으로 스르륵 끌려가고 있었다.


"붕어빵 10개요."

"저는 슈붕으로 5개요."


이 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사장님, 만 원 계좌이체 했어요!"


가격도 안 물어봤다. 요즘 붕어빵이 개당 얼마냐고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어차피 줄 서봐야 순서가 꼬이니까, 먼저 돈부터 쏘면 내 차례가 밀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이게 겨울 노점상에서 빨리 주문하는 스킬이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응!"


아이는 붕어빵을 받자마자 꼬리부터 뜯었다.

슈크림이 '슉' 하고 터져 나왔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이거다 싶었다.

이제 아이는 태권도 학원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붕어빵을 사 먹기 위해서라도 태권도 학원을 갈 것이다.


지금까진 젤리, 삼각김밥, 아이스초코 같은 걸로 버텼지만, 늘 뭔가 빠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로 생긴 붕어빵이 그 빈자리를 정확하게 채워줬다.


사실 '붕세권'이라는 말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동안 우리 동네엔 그게 없었다.

멀리서 사 오면 식고 눅눅해지고, 아이는 "이거 아니야" 하며 손도 안 댔다.

냉동 붕어빵을 구워봐도 그 꼬리 부분의 바삭함과 슈크림의 달콤한 맛은 절대 못 낸다.

우리 집은 붕어빵을 사랑했지만, 늘 붕어빵과는 멀리 지내던 관계였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우리 집이 붕세권이 되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나는 그 말을 해버렸다.


"내일도 사줄게. 태권도만 열심히 가자."


그럴싸한 동기부여라고 생각했다.

'강요'말고 '보상'으로 끌어내는 아빠의 지혜라고 스스로 포장도 했다.

그런데 이게 함정이었다.


다음 날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오늘은 슈크림 5개 사주면 안 돼?"

"5개나 왜?"

"나랑 태권도 같이 하는 친구들 있는데, 나눠줄 거야."


그렇다.

내 입에서 나온 달콤한 말은, 순식간에 '붕어빵 계약'이 되어버렸다.

태권도 출석률을 높이려던 내 한 마디가, '붕어빵 오픈런'으로 진화했다.


게다가 이 집은 카드 결제가 안 된다.

매일 3천 원씩 현금을 구해야 한다.

퇴계이황 선생님이 저승에서 기뻐하실 일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명백한 불공정 계약이다.

붕어빵은 내가 사고, 학원은 아이가 다니고, 관장님과 붕어빵 사장님은 그저 웃는다.

이득은 그들에게, 지출은 나에게.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다.


"아빠, 오늘은 갈래."

그 한마디면 피곤이 사라진다.


그래도 이 말은 꼭 남겨둬야겠다.


님아, 그 말을 너무 쉽게 뱉지는 마오.

붕어빵 사줄 테니 학원 가자는 그 말.


그 말은 당신의 얼마 안 남은 현금을,

고스란히 삼켜버릴지 모른다.


나처럼.


오늘도 열 개 사러, 아이보다 먼저 달려간다.

붕어빵을 조공하는 내 처지가 우습지만,

아이가 태권도에 가고 싶어 하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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