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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trict Code Dec 07. 2023

뉴욕여행이 불편했던 이유

뉴욕은 도시가 아니라 세계라는 말, 뉴욕 어디를 걸어도 영화 속 장면이 된다는 말이 있다. 미국에 살면서 막연히 '뉴욕은 가야지'생각했고 주변 사람들도 "뉴욕이 진짜 미국이지"라며 뉴욕을 평가했다.


뉴욕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텍사스를 살면서 차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뉴욕이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라 생각했다. 도보권에 맛있는 한식당이 있다가 지하철을 조금만 타면 유명한 공원, 미술관이 있는 뉴욕 프라는 부러움 자체였다.


그리고 미국 하면 떠오르는 뭔가 트렌디한 감각들은 다 뉴욕의 것 같았다. 텍사스 미국 남부 컨트리 음악이라면 뉴욕은 월드투어를 매진시키는 팝가수의 최신곡, 히트곡 같다. 그렇게 시골쥐가 도시구경하는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직접 본 뉴욕의 거리는 화려하고 강렬했다. 기회를 잡아 성공한 자들, 유명한 예술인들, 세계를 선두 하는 기업들의 당당한 활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만든 부와 명예들은 동경할만한 뉴욕의 한 부분을 만든다. 그런 뉴욕 거리를 걸으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한눈에 '세계 자체'를 보는 것 같은 황홀함이 있다. 한껏 들뜬 관광객과 뉴욕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언어들은 개성 있고 발랄했다. 뉴욕은 말 그대로 세계인들의 모여 만채로운 문화 용광로(Melting pot)였다. 이 용광로는 데일 것 같이 펄펄 끓고 있었다. 왜 많은 이들이 뉴욕을 사랑하는지 알 것도 같다.


-여기까지 뉴욕의 첫인상이고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리고 뉴욕의 거리를 더 걷다 보면 뉴욕의 무의식 같은 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뉴욕의 거리는 간헐적으로 마약 냄새가 진동다. 조금만 보안과 감시가 느슨한 곳은, 아니다. 사실 각 잡고 관리하지 않은 모든 거리 곳곳에 노숙자들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다. 그들에게는 악취가 났다. 대부분 남자였는데 거기서 처음 본 여자 노숙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보물이라도 찾는 모양새로 쓰레기통에 머리를 깊숙이 넣은 그녀를 보고 '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일부 거리의 구석에는 어두운 색의 제법 큰 쥐들이 보였다. 유럽 관광객 가족은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그 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리에는 화려한 뉴요커들, 잘 차려입은 사업가들이 있다. 그들이 걸친 것에 굳이 명품 로고를 찾아보러 애쓰지 않아도 한눈에 그들의 옷은 비싸보였고 관리받은 헤와 반짝이는 신발들은 그들의 빛나는 부를 보여준다. 아무리 서울 아파트가 비싸다지만 뉴욕만 할까. 유명한 건축가가 고심해서 지은 예술적인 건축물에 사는 그들은 서민이 넘볼 수 없는 세계에 산다. 그들도 집 근처 뉴욕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한눈에 보이는 빈부격차직관하고 도저히 의연해질 수 없었다. 이 정도라고?

'이서진의 뉴욕뉴욕'에 이런 이야긴 없었는데...


남편에게 말했다.

"저 사람(노숙자) 좀 봐."


누가 봐도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 노숙자를 보고 내가 경악하며 말했다. 신기하게 거리에 걷는 사람 중에 그 노숙자를 보고 놀라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편은 말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이런 게 일상이라, 저 사람이 이제 안 보여. 너만 보고 있어."


들은 있지만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뉴욕의 일상에서 노숙자들은 아마도 처음에는 연민의 대상이었겠지만 곧 기피의 대상이 되고 이제는 삭제된 존재가 되었다.


차이나 타운에서 범죄자와 경찰을 봤던 거리


차이나 타운에 갔을 때는 맞은편 건물에 그려진 화려한 그래피티를 찍다가 바로 눈앞에서 범죄자와 경찰을 동시에 보았다. 정확히는 범죄자로 보이는 남자가 전력질주를 했고(심지어 내가 그래피티를 찍는 도중이라 범죄자 사진도 같이 찍혔다) 바로 뒤에 경찰이 그를 쫓았다. 상황 파악이 되었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찰차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러 댔다. 뉴욕 여행 중 끊임없이 들리 요란한 사이렌의 현장을 직접 본 것이다. 무서워서 사건 현장을 계속 볼 수는 없었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범죄자는 쓰러져있었고 경찰이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이상 더 이상 차이나타운을 '관광'할 수 없었다. 방에 핸드폰과 지갑이 있나 자꾸 확인하게 되고 가방을 만지작거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니 피로했다.



다시 본 뉴욕의 거리는 지저분하고 언제 어디서 범죄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리고 욕 여행은 계속되었다.


마약 냄새나는 거리를 지나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고 근처에 뉴욕 현대미술관(모마) 있다. 길거리에 1.5달러 조각피자를 팔고 건너편에는 한 끼에 평범한 대학생 한 달 생활비를 내야 하는 스테이크집 있다. 내 연봉을 줘야 살 수 있는 가방을 든 여자가 아이와 신호를 기다린다. 근처에 내 딸보다 겨우 두세 살 많아 보이는 꼬질꼬질한 여자 아이가 오레오와 젤리를 팔고 있다.


우리 모두는 평등한 존재라는 종교적 이념 아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이 있고 성공기회를 약속하는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나라, 미국.


뉴욕 길거리에서 본 풍경은 미국의 부조리를 까발린다. 평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선명한 계급구, 다르게 매겨지는 삶의 가치들, 누군가의 자유가 다른 이의 부자유를 주는 현실, 무고한 사람들의 불행과 이를 이용한 누군가의 성공 등은 미국의 민낯이다.


원래 삶은 부조리, 산다는 건 수많은 아이러니를 견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다.


여행지에서만큼은 뻔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자본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던 뉴욕은 그래서 불편했다.






자본주의라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저만치 밀려난 사람 중에 부모님도 있었다. 삶에서 가난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이 나보다 성숙 아닌지 알 수 있다. 의 경우, 어두운 방식으로 일찍 철이 드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유명인이 모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걸 들었다. 요지는 "시니컬해지지 말 것" 이였다. 세상은 낙관적이고 희망을 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단순한 교훈을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니컬하게 보낸 학창 시절 동안 크고 자잘한 행운들 삐딱하게 서 있던 나를 피해 갔다. 


그래서 반 임원을 뽑으면 3명 중 2명은 기초수급자 부모님을 둔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반 아이들이 나보다 성숙하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가난을 모르는 중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가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하는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별 노력 없이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가난 앞에서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내공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난은 낙엽만 지나가도 웃는 아이들의 표정을 쉽게 무채색으로 만들 수 있다.


전반적으로 가난한 우리 반. 장학금 지원, 후원을 하는 다양한 사회적 단체 및 기업들에게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단연 1순위 후원 대상이었다. 부장님과 선배 교사를 따라서 열심히 추천서를 썼다. 약간의 수고를 하면 학생들에게 쏠쏠한 금액의 장학금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지원을 받은 반장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반장은 삼촌과 외숙모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부재했고 어머니는 타지에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장 어머니는 보풀이 잔뜩 있는 원피스를 입고 오셨다. 짙은 담배냄새가 났다. 살면서 나에게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해준 어른은 그분이 처음이었다. 어머니와 상담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잠시 멈춰 섰다. 입안에 쓰디쓴 액체가 자꾸 맴돌았다. 


반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1년을 보내는 동안 삶의 부조리를 서서히 삼켜냈다. 그리고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 가는 누군가의 말을 올리게 되었다.


그래도 간절하게 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쾌적한 삶살았으면 했다. 런 바람은 교사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래서 평소 아이들과 친구같이 이야기하다가도 꼰대스럽게 상담했고 경제공부의 중요성을 말했다. 공부로 성공한 선배들 이야기를 자주 했고 절망을 이겨낸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들려줬다.


가난에도 장점이 있다. 소극적인 의미로는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미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가난이 주는 결핍이 목표와 동기를 만든다.


반 아이 중 교우관계도 좋고 공부도 묵묵히 하는 학생 B와 상담한 적이 있다. "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라는 질문에 B는 이렇게 답했다.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서요. 반에서 공부 안 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돼요."


그리고 B는 상당히 구체적인 진학 계획을 말했다. B가 말한 고등학교의 입시요강을 알아보고 서류준비를 함께 했다. B는 고등학교 진학 후의 진로에 대해서도 계획이 있었다. 가고 싶은 회사가 명확했고 그 회사의 연봉과 복지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입사 가능한지 샅샅이 알아봤고 그 방법을 숙지했기에 입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가난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결핍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B는 이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결핍과 상처는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려준다.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커 가는 아이들을 본다. 그래, 삶이 힘들게 할지라도 절대 주저앉지 말자. 너희들도, 나도.








뉴욕 여행 후 텍사스의 식당


뉴욕 여행 후 다시 돌아온 텍사스는 더 이상 지루한 노잼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여유로운 낭만이 있는 힐링 공간이자 매너를 갖춘 사람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하. 태세전환 중입니다.

'텍사스야, 미안하다. 그동안 가치를 몰라봤다...'


제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네가 미국에서 손꼽히는 안전하고 깨끗한 곳이라는 것도 실감했고요. 아마 뉴욕에서 어깨로 저를 밀치고 가던 바쁜 뉴욕직장인들, 문을 잡아주지 않아서 아이가 다칠 뻔한 일 등을 겪지 않았으면 미국 사람 대다수는 여기 텍사스 사람처럼 여유롭고 매너 있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오버를 더 하자면, 누군가 한국이 헬이라고 과장한다면 뉴욕은 세계의 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뉴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세계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뉴욕에는 한국관광객도 많았는데 그중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자녀와 엄마가 단 둘이 뉴욕 여행 온 모습은 참 부럽더군요. 자유의 여신상보다 그런 장면이 더 다가오는 걸 보니 뭔가 평범하지 않은 관점으로 뉴욕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텍사스에 살다가 뉴욕을 간 것이 아니라 한국에 살다가 미국 여행으로 뉴욕에 갔다면 미국 새롭고 낯선 모습을 더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재미는 덜했지만 텍사스 재평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만약 뉴욕 살다가 텍사스 놀러 왔다면 주변에 뭐 없고, 할 것도 없는 재미없는 시골이라 욕하면서 뉴욕이 백번 천 번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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