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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trict Code Dec 28. 2023

임용고시 최종불합격 이야기 (2)

극복하기


안다. 그들은 프로다.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점수를 주려고 훈련된 사람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감정으로 굳이 내 점수를 깎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미 시험장에서 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준비한 것들을 보여줄 수 없었다.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만큼 뻔뻔하지는 못했다. 그냥 울고 싶었다. 그러고 그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최종 탈락 후 한 달쯤 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음 해는 합격해야 했다. 그래서 졸업한 학교로 다시 갔다. 교수님을 찾아갔고 고개 숙여 내 철없던 모습을 사과드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민망하고 어색한 감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진짜 쪽팔리는 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또 불합격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나를 받아주셨다. 그렇게 학교에서 후배들과 1년간 다시 공부했다. 그리고 그 후배들은 나와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을 볼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2차까지 갔던 내 노하우를 모두 털어놨다. 질문을 받으면 아는 한 최대한 자세히 말해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교수님이 나를 용서해 준 건 이런 딜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정신교육(?)이었으나 하나만 이야기하면, 나와 대판 싸웠던 과선배 앞에서 수업실연을 하고 평가를 받은 일이 기억에 남는다. 과실에서 그 선배와 약 3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서로를 보던 당황스럽고 묘한 눈빛, 내가 인사를 하고 최선을 다해 수업 실연을 했던 일, 선배가 약간의 고칠 점을 말해주면서 마지막에 "잘하네"라고 평가해 주던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었나? 멍하니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나? 복잡한 감정 때문에 그날 해야 할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뭔가 후련한 기분으로 잤던 것 같다. 그리고 그해 합격했다. 작년과 1차 점수는 비슷했는데 2차 점수가 높아서 합격할 수 있었다. 상대평가로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대부분의 시험에는 운이 필요하다. 사하게도 이 날 도왔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말하면 내가 확대해석한 거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남편은 너 정도의 절박함과 노력이면 다음 해에 무조건 합격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참비로 따진 것도 잘했다고 말한다.) 남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만한 마음과 열등감으로 교에서 인사를 하지 않고, 예의 없이 대화하고, 서툰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했던 점은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지난 과오를 마주하고 변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동안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하. 학생들에게 들려줄 썰 하나 인생에서 만드는 일이 이렇게 쉽지 않다.


"얘들아, 그러니까 옆에 있는 친구를 무시하지 말고 다정하게 대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어른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 중요.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다시 만날 지 몰라. 세상은 넓지만 때로는 놀랄 만큼 좁고 촘촘하게 연결돼 있거든. 나중에 너희들이 세계적인 CEO가 될 수도 있어서 내가 지금 너희들한테 잘하고 있잖니. 그때 나 직원으로 입사시켜줘야 한다. 알겠지?(학생들 대답: ㅋㅋㅋ네에~) 이제 수업 들어 가자"




한 번은 이 이야기가 끝난 후에 


" 선생님은 처음부터 꿈이 선생님은 아니었네요."


며 은근 서운한(?)듯 말했는데 그 속에 약간 안도하는 뉘앙스를 눈치채고 얼른 덧붙였습니다.


"그래, 지금 꿈이 명확하지 않아도 된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계속 꿈을 찾으면 돼. 인생에는 많은 기회와 선택이 있어"


또 한 번은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이


"선생님 되신 거 후회하세요?"


라며 묻더라고요. 아마도 취업이 절박해서 교사가 된 사실이 마음에 걸린 것이죠. 그 질문은 꼭 '저희를 만난 걸 후회하세요?'로 들려서


"아니, 너희를 만나서 좋아."


라고 답했습니다. 리고 대학 4년 내내 마케팅을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아닌 학교에서 고객인 아닌 학생들에게 '가치'를 마케팅하는 걸로요.






마지막으로 시험 불합격 후에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 두 가지 말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혹시 비슷한 처지에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요.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올바르다면 조금 느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한 친구가 제 불합격 소식을 듣고 카톡으로 보내 준 문장입니다. 이 문자를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먼저 합격한 사람들을 질투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힌 비교와 경쟁의식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들이 많다. 하지만 임용시험의 경우엔 일단 합격만 하면, 힘든 시절이 모두 보상이 된다. 그런 점에서 다시 도전할만하다."


이건 아빠가 해주신 말입니다. 다사다난했던 아빠의 인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엔 절대 '고작'이 아니었음에도 '고작 시험에 떨어졌다고 징징댈 건 아니지'라며 허세를 부리게 만든 말입니다. 리고 동시에 (모순적이지만) 지금 겪는 슬픔과 아픔들이 합격만 하면 진짜 보상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순수한 의심도 있었고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의 노력이 모두 보상이 되는지 아닌지요. 저 그게 궁금해서라도 합격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문득, 만약 끝내 합격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들은 도저히 보상받을 수 없는 젊음의 낭비이자 실패인가라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우울한 걱정도 공부의 동력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동력으로만 쓰시되 진심으로 믿지는 마시길. 그간의 쏟아부은 모든 노력은 절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근육 혹은 내공로 차곡차곡 적립는 거 아시죠? 남들이 보면 제대로 헛발질한 4년간의 취준기 시절 덕분에 학부시절 거의 꼴찌였던 제가 임용시험 쉽게 덤벼들 수 있던 것처럼요.)


위의 두 가지 문장으로 불합격의 여진을 털어냈는데요. 동시에 몸을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산책을 하고 등산도 자주 했어요. 체력을 기르고 생각도 정리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등산하면 약간 땀이 나기 때문에 눈물이 나 티가 덜 나는 거 아시죠? 박혀서 우는 것보다는 하늘과 산을 보면서 우는 게 부모님과 스스로에게 덜 미안하더군요.



그저께 일을 보러 나왔는데 한 초등학교 앞 안내판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BLOOM WHERE YOU ARE PLANTED"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마음 한 구석에 꽃이 피 느낌이 좋아서 다음날 안내판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활짝 피어나시길 바랍니다."


사실, 합격의 기쁨은 '순간'이잖아요. 순간은 짧고 인생과 현실은 길죠. 그냥 하루하루 꽃밭으로 만들어버리죠 뭐. 누가 뭐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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