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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NO Oct 20. 2024

첫 필라테스 수업, 허겁지겁 레깅스 사서 뛰어간 썰

평생 나에게 없을 것 같던 운동과 처음 뻘쭘하게 마주한 날 

중요한 일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미뤘던 극도의 귀차니즘을 극 P라고 포장하던 20대의 어린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운동복을 사는 일부터가 평생 처음 운동을 마음먹은 나에게는 난관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회초년생이었던 그 무렵엔 막 필라테스 붐이 불 때 이기도 했고, 스스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있는 ‘필라테스’로 정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월 24만원이라는 거금을 턱 결제했는데, 막상 운동을 가려니 ‘운동복’이란 걸 내 돈 주고 사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에슬레저룩이 뜨고, 편안한 운동복이 일상복이 되면서 레깅스, 조거팬츠 같은 게 익숙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무려 7년 전이다)

그 당시의 나는 온라인 쇼핑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았는데 오프라인에서 사려니 어디서 사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운동복 사러 백화점까지 가긴 귀찮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운동 시작 날까지도 운동복을 마련하지 못한 나는 대충 퇴근 후 센터로 가는 길에 있는 롯데마트의 스포츠 매장에서 레깅스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거기 가면 뭐라도 있겠지.'


필라테스란 운동을 찾아보니 보통 몸에 붙는 옷을 입고하길래 상의는 대충 히트텍을 입기로 했다.(11월이었다) 그것도 충분히 몸에 붙고, 넥 라인도 인터넷에서 본 운동복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때 운동의 운자도 모르던 내겐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드디어 필라테스 첫 수업 날.
호기롭게 급한 쇼핑 스케줄을 잡았는데 하필 칼퇴에 실패해 시간이 촉박했고, 나는 퇴근 후 허겁지겁 마트 운동복 코너로 달려가야만 했다. 급하게 눈에 보이는 아식스 매장으로 뛰어들어가 매장을 스캔하고 레깅스 하나를 대충 골라 입어보는데, 땀에 젖은 다리를 쫙 달라붙는 레깅스에 욱여넣기란 왜 이리 쉽지 않은지..
한 발로 서서 낑낑대야 했고, 그러는 동안 땀은 더욱 많이 났다.


절망스럽게도 힘들게 입어본 인생 첫 레깅스는 서양인의 체형에 맞추기라도 한 듯 잘라내야 할 것 같은 길이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던 나는 다른 옷을 고를 새도 없이 그냥 빠르게 계산을 하고 도망치듯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탈의실에서 옷을 급하게 갈아입는데 탈의실은 또 왜 이렇게 좁고 불편한지,
미처 신경 써서 입고 오지 못한 나의 낡은 팬티가 꽤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난관 끝에야 수업에 늦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다.




첫 수업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낯섦과 당혹감의 감각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5:1 그룹수업에 4명 정도가 있었는데 나 빼고는 다들 척척 능숙하게 동작을 해냈고, 선생님은 처음인 나를 밀착 케어하며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 조금 눈치가 보였다.
스프링 하나 제대로 걸 줄도 몰랐던 나는 그저 수업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 와중에 몸은 심각하게 뻣뻣해 고통스러웠으며,
모든 상황이 낯설고 어색하기 그지없어서 내내 긴장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이게 운동이 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힘들긴 하고 몸을 쭉쭉 늘려주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선생님이 말하는 부위들이 제대로 자극을 받고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동작들을 흉내는 내는 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항상 의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나갔다.
적지 않은 돈을 결제했으니 돈 날리지 말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 주 2회를 빼먹지 않고 나가기만 하는 건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보다는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올바르게 늘리고 제대로 쓰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수업을 받다 보니 내가 단순한 스트레칭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척추분절’ ‘어깨는 펴되 흉곽닫기’ ‘아랫배를 가슴 쪽으로 끌어올려라’ 이런 이상한 단어들이 난무하는 필라테스 현장이라 가끔 밈이 되기도 하지만 필라테스는 내 척추 뼈 마디마디, 나의 호흡방식, 운동하는 동안의 내 자세와 정렬을 느린 호흡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고, 난생처음 몸을 쓰는 운동을 하는 나에겐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가는 훌륭한 연습이 되어주었다.



또 필라테스는 꽤 엄격하게 바른 자세와 올바른 호흡을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며 등 뒤쪽과 갈비뼈를 부풀리고, 내쉬며 아랫배를 함께 쪼으고,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아랫배는 더 쏙 집어넣는 호흡법을 배웠다.
처음 해보면 숨을 들이마시는 데 아랫배를 더 들어가게 만든다는 게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이게 바로 코어를 만들어주는 필라테스 호흡법이었고, 이때 코어 힘을 단단하게 많이 키운 것이 이후 모든 운동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단 꾸준히 나가기 시작하니 낯설었던 모든 과정이 점점 익숙해졌다.

운동복도 이쁘고 잘 맞는 걸로 골라서 입는 재미가 생겼고,
무슨 기계처럼 흉물스럽게 느껴지던 리포머는 어느덧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선생님의 큐잉에 맞춰 흘끔거리지 않고도 정확한 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주 서서히 내 몸을 올바르게 원하는 부분만 쓸 수 있게 되었고, 전보다 유연해졌으며, 단련된 코어로 배에는 희미한 王자 비슷한 게 생겼다.





돌이켜보면 운동을 등록하고, 운동복을 사고, 기괴해 보이는 필라테스 기구와 익숙해지고, 선생님한테 내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운동을 배울 수 있게 되기까지. 그 모든 게 난관이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쨌든 뚝딱거리며 필라테스 수업을 9개월 동안 꾸준히 나간 것이 7년 운동 여정의 첫 시작이었으니까.



내게 운동을 시작한 첫 1년은 그저 운동복과 친해지고,
어색한 센터와 뚝딱거리는 내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일과 후 핑계 대지 않고 센터로 나가고,
서서히 동작이 발전하는 내 모습에 자신감을 키우는 그런 시간이었다. 



당장 몸이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몇 개월 만에 변하는 건 인생이 아니다.
지금 운동이 처음이라면. 그래서 처음의 나처럼 뻘쭘하고 스스로가 부끄러운 순간을 겪고 있다면,
잠깐의 부끄러움에 집중하지 말고
운동 중의 좌절과 힘듦에 집중하지 말고
달라지지 않는 몸에 답답해하지 말고
운동을 나가는 변화한 내 모습 그 자체로 스스로를 칭찬해 주자.



2017년 1월, 첫 필라테스 수업 후 2달이 넘도록 히트텍과 길어서 쭈글쭈글한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던 나의 모습과 2024년 8월, 7년 뒤 오랜만의 필라테스 수업 후.
몸의 라인과 운동복, 그리고 거울샷의 자신감정도가 확연히 달라졌다.ㅎ



*추신: 위에서 설명한 이유들로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필라테스를 추천합니다. 코어힘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키워져서 다른 운동을 할 때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준답니다 :) 하지만 분명하게도, 필라테스만 해서는 살은 안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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