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진짜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는 법
나는 병원에서 유명한 꼬마였다.
어렸을 때 몸이 약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만 해도 감기만 걸렸다 하면 폐렴으로 진행되기 일쑤여서 매번 입원을 했다. 틈만 나면 입원을 하니 소아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모두 나를 알 정도였다고 하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플라스틱 파이프 안의 파란 공 3개를 후 불어 밀어 올리는 연습을 꾸역꾸역 했던 기억은 있으니, 폐활량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오래 달리기를 못했다.
단거리 달리기는 운동회 때 반 대표를 할 정도로 잘했는데 오래 달리기만 하면 미친 듯이 헐떡거리는 숨을 어떻게 참고 달릴 수 있는지 도무지 방법을 몰랐고, 몇 바퀴 뒤처져 꼴찌 그룹으로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숨이 차는 운동을 극도로 피했다.
달리기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고,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몇 년은 필라테스, 요가 같은 정적인 운동만 지속했다. 사실 어렸을 때의 폐렴이 지속적으로 폐활량에 영향을 끼쳤는지, 진짜 내가 폐활량이 또래 평균보다 많이 좋지 않은지는 확실히 모른다. 그저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가 믿고 있는 대로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규범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살아간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습관에 대한 탁월한 책에서는 습관을 만드는 법을 소개하기 전에 가장 먼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운동 얘기하는데 왜 갑자기 고리타분한 습관 얘기냐고?
난 인생 첫 다이어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가져왔던 정체성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산소 운동을 못 한다는 것은 내가 믿고 받아들인 나의 정체성일 뿐이었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20대 후반이 되며 슬슬 아랫배와 허벅지에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25살 때부터 필라테스나 요가를 주 2회 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원래대로 잔뜩 먹으면서 그 운동만으론 몸매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경각심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제주도 여행이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해수욕장에 가서 수영복을 입었는데 이럴 수가.. 분명 2년 전만 해도 날씬했던 내 몸이, 어느덧 허벅지가 부을 대로 부어 울퉁불퉁한 하체비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동안 외면하던 고강도의 유산소 운동을 철지부심으로 시작했다.
단단한 결의로 등록한 운동이었지만 고강도 서킷트레이닝은 이름만큼 첫날부터 매운맛 그 자체였다.
이 운동은 1가지 동작을 45초 동안 쉴 새 없이 반복하고, 15초를 잠깐 쉬고 바로 다음 동작을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4가지 다른 동작을 모두 하는 게 1세트로, 총 4세트를 해야 했는데 15초라는 짧은 시간은 내 심장박동과 호흡을 원래대로 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운동하는 내내 심장이 정말 터질 것 같고 헐떡이는 숨에 호흡곤란이 올 것 같았지만, 그룹 운동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다음 운동을 이어 나갔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커다란 아령을 번쩍번쩍 드는데 평생 아령을 처음 들어본 나는 제일 조그마한 미니 아령을 들고 여러 번 쉬어 가면서도 버거웠다.
끝나고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심지어 운동 전에는 속을 비워놔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1시간 전쯤 먹은 간단한 저녁이 속에서 부대끼며 올라오려고 했고, 10분 거리의 집을 바로 갈 수 없어서 몇 번이나 중간에 앉아 속을 달래며 기어가야 했다.
그 뒤에 극심한 근육통으로 1주일 동안 절뚝거리며 걸어 다닌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운동을 등록한 게 후회도 됐지만 내 수영복 사진을 보며 꾹 참고 일단 꾸준히 2-3회씩 센터로 나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3개월, 6개월이 지나니 1.5kg, 3kg, 5kg로 차근차근 내 손의 아령은 커져갔고 나도 어느덧 커다란 아령을 씩씩하게 들고 컨트롤할 수 있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뒤의 개운함이란 걸 느끼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런 스스로에게 정말 놀랐다.
평생 숨차는 운동은 잼병에 체력이 약하다고 믿고 살았는데 어느새 센터에서 제일 잘 해내는 사람 중 한 명으로, 틈만 나면 친구에게 이 운동이 얼마나 재밌는지 즐겁게 떠드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서서히 ‘고강도의 유산소 운동을 하는 나’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다. 처음에 싫었던 행동을 참고 반복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여기엔 정체성에 대한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유산소를 못한다’는 정체성도 있었지만 ‘항상 날씬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 또한 있었던 거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30살 이전까지는 살면서 살쪄 본 적이 없었고, 잘 먹고도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은밀한 뿌듯함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까 나는 ‘살찐 나’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살찐 나는 내 정체성에 없었다.
살찐 모습에 익숙해져 새로운 나의 자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은연중에 그걸 필사적으로 거부했고, 내가 날씬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고집했기 때문에 못한다고 생각했던 유산소 운동도 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내 정체성을 이용한 동시에 또 다른 정체성을 깨부순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내가 무슨 행동을 극복하고 하거나,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거의 모든 것이었다.
혹시 ‘나는 체력이 원래 약해서 등산 같은 건 못해’라든가
‘나는 먹는 게 원래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오늘의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못 참아. 이렇게 먹는 게 행복이지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자.
그 바탕에는 ‘운동이란 건 절대 못하는 나’ ‘어쩌피 절대 날씬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정체성이 있다.
당신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에 대한 마음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정체성은 단단한 포석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매 순간 바꾸고 선택할 수 있다. 오늘 선택한 습관으로 지금 내가 원하는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
정체성은 경험을 통해 습득되고 익숙해진다. 엄밀히 말하면 습관은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원래 그런 건 없다. 그렇다는 정체성을 받아들인 내가 있을 뿐이다.
매 순간 나는 나의 선택으로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어떤 정체성의 손을 들어줄지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믿고 있는 자아상을 ‘인식’하고, 변화를 진심으로 원하며, 수정하기 위해 올바르게 반복한다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은 새로운 정체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시작은 내 정체성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