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따비치에서 꿈꾸던 서핑을 -

땅 위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인 채로도 자유로울 것.

by NYNO


서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아니 서핑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일까?

서핑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고 멋있게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


양양에서 서핑을 한 번 배워본 적이 있는데, 그날 워낙 날씨가 좋지 않아 제대로 타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서 발리 여행을 계획하면서 '서핑의 성지'라고 불리는 발리 해변에서 서핑은 꼭 한 번 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행 끝 무렵 드디어 서핑을 하는 날, 몸이 좋지 않았다. 감기 기운으로 몸도 무겁고, 혼자 레깅스와 래시가드를 입고 바이크를 타고 스미냑에서 꾸따 해변까지 서핑 강습을 받으러 간다는 게 갑자기 피곤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할 순 없었다. 출발 전에 ‘할 수 있을까? 진짜 재미가 있을까?’ 하면서 의심하고, 나를 가로막는 건 사실 약간의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이 하고 싶은 마음을 가로막는 느낌. 거기에 지기 싫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바이크에 올라탈 수 있었다.


바이크 타고 꾸따 해변 가는 길


그런데 바이크에 올라타고 꾸따 해변으로 달리자마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향하는 길 위에서 출발 전의 걱정과 부담감은 빠르게 사라졌다.

역시 출발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꾸따 해변에 도착하니 예약해 둔 서핑클럽의 강사들이 반겨줬다.

사실 처음엔 생각보다 웃음기 없고 무서워 보이는 강사들의 표정과 분위기에 좀 쫄았었는데, 그들은 바다에 들어서자 180도 달라졌다. 미친 사람들처럼(?) 재밌었다. 파도가 그들을 흥분시키는 듯했다. 끊임없이 장난치고, 보드를 밀어주며 소리를 지르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넘어질 땐 웃으며 괜찮다고 위로해 줬다.

그들 덕분에 몸은 힘들었지만,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로제의 아파트를 계속 불러내던 친구의 바이브..ㅋㅋ심지어 옆에분은 대만사람인데 자꾸 아파트 아냐고 물어봤다ㅎㅎ


서핑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파도를 타는 그 순간의 자유로운 감각이었다.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순간, 머릿속은 완전히 비워졌다. 흔들거리며 집중해서 몸의 중심을 잡고, 파도의 흐름에 둥실 몸을 맡기는 순간이 정말 좋았다. 파도를 거슬러서 다시 시작 지점까지 걸어 들어가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 이판 사판의 심정이 되어서 악을 쓰고 들어가게 되었다. 파도와 맞서 싸우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서핑이 끝날 무렵 마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서핑을 끝내고 서핑 클럽에서 내어준 의자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에 감탄했다. 처음 본 꾸따 비치의 노을은 정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아름다웠다.

누구도 언제 가냐고 묻지 않았다.

그들도 그냥 수업이 끝나면 앉아서 웃고 떠들며 유유자적 노을을 보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함께 편하게 앉아 웃고 떠드는 그 순간이 정말 평화로웠다.



그러다 이 서핑 클럽의 매니저 K와 긴 대화를 하게 됐다.

그는 서퍼다운 외모와 달리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수업 중에 물 밖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면서도 강사들을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그러다 조금 노는 것 같으면 어김없는 호통과 빨리 열심히 가르치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이 서핑 클럽의 평점 좋은 리뷰는 그 덕분임을 서핑하는 2시간 동안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이인만큼 서핑 클럽 운영, 매출 고민, 바쁜 일정 탓에 연애까지 소홀해진다는 그의 고민을 들으며, 나는 자유롭게 보이는 삶의 이면에도 늘 책임과 고민이 있음을 깨달았다.



매일 즐기면서 수업하고, 파도를 타고, 해가 지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수다 떠는 그들의 삶은 어찌 보면 유유자적, 자유로움 그 자체로 보이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삶도 있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떠올렸다.

서핑은 자유의 상징 같지만, 삶은 바다 밖에 있다.


사실 내가 서핑에 대한 로망을 가졌던 것도 결국 자유로움 때문이었다.돌이켜보면 나는 자유가 뭔지도 모르면서 동경하고 그걸 찾아 헤맸다.

그런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자꾸만 어딘가로 떠나려 했던 나는, 사실 내가 벗어나려 했던 것이 현실이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과 '스스로의 속박'이라는 걸 몇 해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자유를 느꼈던 순간들은 나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선택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졸업 후 편한 길을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순간들,

불안을 이겨내고 이직이나 퇴사를 결정했을 때,

그리고 오늘처럼 작은 두려움이나 귀찮음을 이겨내고 서핑을 하고, 여행을 하고, 원하는 걸 실행해 나갔을 때.

내가 자유를 느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사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유는 내 안에 있었다.


오늘 내 로망이었던 서핑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에서 원 없이 하고 나서 다시금 생각했다.

굳이 멀리 바다로 떠나지 않고, 내 두 발을 단단히 땅 위에 붙이고도 늘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다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노을을 뒤로하고 바이크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하늘에 남은 노을의 여운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약간은 선선해진 공기를 맞으며 달리는데, 기분이 정말 정말 좋았다. 마치 그랩 기사님과 밤 드라이브를 하는 느낌ㅎㅎ

몸은 피로하지만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마음은 몽글몽글했다.


서핑을 하고 노곤한 몸으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서퍼들과 수다를 떨며 미치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봤던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여행이 끝난 후 일상에서도 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막연히 또 자유를 갈망할 때마다 자유는 결국 오늘처럼 작은 두려움을 뛰어넘은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지.


자유는 그런 선택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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