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웨이트라는 종착역
처음 헬스장을 다니는 건, 필라테스나 요가를 등록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틈에서 기구를 붙잡고 뚝딱거리는 것도 어색했고, 사방에 있는 거울들은 마치 다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 같은 압박감을 줬다.
서툴고 뚝딱거리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난 내향적인 성향도 아닌데, 왠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운동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헬스장 고인물이 되니 깨달았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다들 힘들어서 멍 때 리거나, 다음 세트 운동 생각뿐이라는 걸.
혹시 내 쪽을 힐끔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쓰고 있는 '기구'를 탐내고 있을 뿐이었다.(나도 가끔 몸이 너무 좋은 분들이 있으면 무슨 루틴으로 운동하나 몰래 보곤 한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진짜 무서운 건 헬린이가 아니라 고인물 빌런들이라는 걸.
꽤 오래 다녔던 헬스장은 굉장히 큰 규모의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깔끔한 곳이었다.
스미스머신도 3-4대에 머신이 없는 렉도 3개가 추가로 있었으니 웬만한 헬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기구들 종류도 굉장해서 다양한 기구를 돌아서 써가면서 재밌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24시인 데다, 일요일도 문을 여는 귀한 곳이라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았고 헬창들이 가득했다. 빌런도 많았다.
대표적인 유형부터 가볍게 시작하자. 세트를 빨리 끝내지 않고 앉아서 한참 동안 핸드폰을 한다.
어떤 분은 기구 옆에 물통이든 수건이든 뭔가를 두고 사라진다. 잠깐 물을 마시러 갔나 기다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른 기구로 갔는데,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계획한 운동을 하지 못한 게 짜증이 난다.
이 유형의 응용 편으로, 두 기구를 한꺼번에 점령하는 빌런도 있다. 케이블 머신을 한쪽 팔에 하나씩 양쪽 운동을 하는 건 사람이 많을 땐 언짢지만 그래도 이해한다. 그런데 한 기구에서 번갈아 하면 될 운동을 세팅이 귀찮다고 2대를 점령하는 분을 봤다. 가장 붐비는 저녁 7시에. 난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혹시 이 헬스장 주인이신가?
그리고, 이 모든 글은 사실 '스미스 머신 점유 빌런'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미스 머신을 그분이 오는 날이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분은 '굳이 저기서?' 싶은 온갖 운동을 스미스머신과 시도할 뿐만 아니라 혼자만의 서킷 트레이닝까지 그 앞을 차지하고 전부 해결했다. 한 번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운동하고 샤워를 다 마친 후 나갈 때까지 지켜봤는데, 무려 2시간 넘게 스미스 머신과 뜨거운 사랑에 빠져 계셨다. 결국 언제 떠나셨는지는 보지 못했다.
결국 문제는 헬스장이 너무 붐벼서 그런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조용한 동네 작은 헬스장으로 옮겼다. 이제 기구는 언제든 내 차지였다.
하지만 이곳엔 헬창 대신 아주머니들의 계모임이 있다. 탈의실은 늘 시끌벅적하다. 이제 나도 자주 보다 보니 얼굴이 친근해져서 가끔 농담에 끼어들기도 하고, 헬스장 온수가 고장 났다는 소식을 관장님보다 아주머니께 먼저 듣게 됐다. 이쯤 되면 나도 거의 계모임 멤버가 된 것 같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오늘은 나시를 입고 열심히 어깨 운동을 하다가 처음 보는 아주머니께 칭찬을 받았다. “어쩜 그렇게 날씬한데 근육도 예쁘게 붙었어?”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감사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곧이어 질문이 돌아왔다.
“아가씨야? 애기 없어? 에이, 그러니까 그렇지!”
아니, 선생님... 저 지금 입술이 파래지도록 운동 중인데요... 먹고 싶은 것도 참고요...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칭찬에서 시작된 대화가 애매하게 끝나서 조금 씁쓸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사실 이런 가끔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계속 헬스장에 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여러 운동을 두루 경험해 봤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근력 운동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웨이트를 꾸준히 하며 인바디 근육량이 가장 빠르게 늘었고, (물론 그만큼 단백질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운동의 목적이 단지 근력만은 아니지만, 근육을 키우고 유지하는 건 분명 중요하니까.
그리고 흔한 ‘재미없는 운동’이라는 편견과 달리, 웨이트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진짜다)
제대로 된 근성장을 위해선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마지막 한 번을 참고, 끝까지 해냈을 때 오는 짜릿함이 있다.
또 무거운 무게를 탈탈 털릴 때까지 들어 올리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개운하다. 운동 중에는 그저 당장의 세트를 끝내는 데만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고, 끝나면 해냈다는 특유의 쾌감이 따라온다. 정말 힘들게 웨이트를 한다면 그 쾌감에 중독되어 헬창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헬스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가끔은 불편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도 그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남고 있는 중이다.
근육도, 뻔뻔함도, 자신감도, 그렇게 조금씩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