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할까

불안과 행복 사이, 나를 허락하는 법

by NYNO



2주간의 짧지 않았던 여행의 마지막 밤.

끝이라는 생각에 매 순간 더 아쉽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인생에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고 돌아온 밤이었다.

일찍 일어나야 해서 억지로 잠을 청해보았지만 아까 본 노을의 여운 때문인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쉽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잠들지 못하고 2주간의 시간을 돌아보다 눈물이 터져버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런저런 걱정과 불안으로, 조금 얼어붙은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내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발리의 태양 아래에서 녹아내렸다.

미소는 부드러워졌다.

매일 요가를 한 내 몸도, 내 웃음 근육도 부드러워졌으며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발리에서 정말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환한 미소,

자연 한가운데서 새소리를 들으며 했던 선라이즈 요가,

내내 친절했던 호텔 직원이 선물해 준 발리니즈 팔찌,

석양이 지는 하늘과 바다를 보며 느꼈던 압도적인 충만함,

서핑하면서 유쾌하게 어울렸던 사람들,

내 몸에 가득 채운 빈땅과 미고랭의 맛,

문득문득 코끝에 맴돌던 길거리의 향내,

실컷 넋을 놓고 바라봤던 다람쥐와 원숭이, 그리고 온갖 새와 도마뱀 소리까지.


'와, 나 진짜 행복했구나. 그걸 억누르고 있었구나. 나 정말 행복했네'

마지막 날 침대 위에서야 뭉쳐 있던 행복감이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돌이켜보니 매 순간이 벅찰 만큼 행복했다. 이 정도의 행복을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라’는 요가의 가르침도, 매 순간 감사하려는 마음도,

내가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으면 반쪽짜리일 뿐이라는 걸.


때론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엄격하다.

이러하지 못해서, 저러하지 못해서, 남들보다 잘 해내지 못해서 스스로 행복할 자격을 재단한다.


나 역시 그랬다.

백수라는 불안과 죄책감이 여행하는 동안 내 행복감을 억눌렀던 것이다.

26살에 퇴사하고 여행할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나이에 스스로 만들어낸 꺼림칙한 마음이 여행의 시작부터 나를 묘하게 불편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되었건 나는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그 편이 나에게 더 좋을 걸 알았기에' 떠나오기를 선택했고,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까지 왔다면 그저 충분히 즐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결국 가장 남는 일이었다.

그 깨달음으로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하던 마음을 알아차리고 지웠다.




내가 그토록 원해왔던 '몰입의 삶'을 위해선 이중잣대가 없어야 한다는 걸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배운 것 같다. 결국 내가 원하는 행복은 무작정 놀 때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내 힘으로 알아차리고, 그대로 행동할 때 오는 것이라는 걸.

그럼으로써 나의 행동과 감정, 몸과 머리와 마음이 한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힘,

그리고 그 마음을 믿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 힘으로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고 결정하는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말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눈앞의 초코케이크를 먹는 즐거움인지, 다이어트를 지키는 것인지.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퇴사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버텨보는 것인지.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지루함을 견디며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용기 있게 찾아 나서는 것인지.

그 선택은 그때의 나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떠한 것도 틀리지 않았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다만, 그 순간의 나와 일치하는 선택이었는지가 중요할 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실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다.


요가반 Morning Flow 수업에서 선생님이 묵직하게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

“What’s done is done.”

이미 선택하고 행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지금의 순간에서 최대한의 몰입과 만족을 끌어내기.

이게 그 단순한 문장 이면에 숨겨진 교훈일 것이다.

내가 멀리까지 날아와 매일 요가를 하며 찾던 것도 결국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아침, 아쉬워서 아침 일찍 바닷가에 나가 신나게 놀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카페를 들렀다.

그곳에서 필립 할아버지를 만났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는 한국에서도 패션 비즈니스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섬유 수입 일을 하며, 발리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었다고.

발리에 와줘서 고맙다고, 쪼글쪼글한 얼굴 한가운데서도 빛나는 형형하고 따뜻한 눈으로 그는 내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었다.

“Bless you.”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내 행운을 빌어줬다.

모르는 사람의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문득 생각했다.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당분간 그 축복들에 책임을 지고 살아보기로 했다.

스스로의 불안과 조급함으로 소중한 축복을 무너뜨리지 않기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빨리 잊는다.

여행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여행에서의 설렘을 일상에서도 간직하자는 다짐은 지켜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이번 여행의 마음가짐만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발리에서의 깨달음과 에너지는 꽤나 강력했고, 돌아와서 몇 개월의 알차고 행복한 백수생활 뒤 다시 취업해서 이전보다 훨씬 즐겁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해피엔딩을 전합니다.
영혼이 지친 분들에게 진심으로 휴식과 발리 휴양을 권합니다. 잠시 쉬어가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