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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14. 2020

장벽이 없으면 좋겠지만요

존댓말이라는 장벽

우리 가족은 반말로 소통한다. 아이도 반말로 이야기하고. 이따금 존댓말이 섞이기도 하지만 아직 아이는 한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만큼 체계적으로 존댓말을 구사하지 못한다. 가끔 이곳에서 한국 어른을 만나 한국어로 소통하게 되면 내 머릿속은 바빠진다. 아이의 한국어를 검열하느라.

"'드세요'라고 해야 돼."
"어른은 이름 부르는 거 아니야."
"어른한테 '걔네'라고 하는 거 아니야(아이는 'they'를 직역하여 어른들을 향해 '걔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국어 가르치기는 영어 가르치기보다 바쁘다. 영어에는 한국어만큼 엄격한 존댓말이 없다. 어린 나이에는 please라든가, Can you - 대신 Could you-로 말해야 공손하다는 정도만 알려 주면 충분하다. 때때로 미국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You should speak more nicely(더 상냥하게 말해라)"와 같은 지적을 하긴 하지만, 그것은 떼 쓰지 말고 원하는 바를 정중하고 확실하게 표현하라는 의미일 뿐, 어른에게 반드시 써야 하는 단어나 어미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물론 쓰지 말아야 하는 불손한 표현은 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은 어른뿐 아니라 친구나 동생 등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자제해야 하며 어른에게만 한정하여 불손하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좋고, 영어 글보다 한국어 글이 좋다. 그런데 미국에서 육아를 하다 보니 존댓말만큼은 피곤하다. 아니, 피곤은 둘째치고 낯간지럽다. 어른에겐 이렇게 말해야 해, 저렇게 말해야 해, 하고 아이에게 설명할 때마다 '뭐 그리 잘난 어른들이라고 이렇게 작은 애들의 언어로부터까지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하나'하는 생각에 민망해진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매주 아이의 교실에서 프린트물을 정리하는 봉사활동을 했었다. 주로 아이와 함께 등교하여 1교시가 진행되는 동안 담임 선생님의 책상에 앉아 조용히 정리를 하였는데, 반 아이들은 수업 시작 전에 교실 밖에서 마주치면 내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걸어 왔다. 어제 젖니가 빠진 이야기, 방금 등교길에 누구를 마주쳤는지, 등교길에 자전거를 탔는지 킥보드를 탔는지 등등.


처음 미국에 와서 아이를 프리스쿨에 등원시키며 가장 색달랐던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이 스스럼 없이 다가와 "What's your name? (아줌마는 이름이 뭐에요?)"부터 시작해서 쫑알쫑알 별별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이다. 특히 점심 시간이나 놀이 시간에 잠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자 교실을 방문(하루 중 아무 시간이고 깜짝 방문이 가능한 프리스쿨이었다)하면 아이의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손을 잡으며 "잡기 놀이 같이 해요" "아니, 우리랑 모래 놀이 해요" "점심 먹을 때 우리 테이블에 앉으세요"하고 귀여운 말들을 한없이 쏟아내는 통에 기분 좋은 바쁨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적엔 어른에게 이렇게 쉽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요즘 애들이라 다른가? 아니면 미국 아이들이라 다른가? 한국에서 아이를 기관에 보낸 적이 없다 보니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도 궁금하여 한국에서 학부모 경험이 있는 이웃 한인에게 물었다.


"한국 아이들도 친구 부모에게 이렇게 편히 말을 거나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라고 답했다. 한국에선 먼저 다가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고. 그러고 보니 미국 아이들은 참 붙임성 있게 말을 잘 한다고.


어쩌면 그 차이는 존댓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른한테는 '하셨어요?'하고 여쭤야지.
어른한테 인사할 땐 고개를 제대로 숙여야지.
어른한텐 그렇게 꼬박꼬박 말대답하지 마.

어른들은 아이와 자신 사이에 스스로 장벽을 쌓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대도 이제 와서 어쩌겠나. 내가 모국의 언어를 바꿀 수도 없고. 최소한의 강압으로만 존댓말을 익히길 바라며, 오늘도 아이와 한국 동화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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