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계절 사이에 부는 바람결은 섬세하고 다정한 것 같다.
더운 바람에 살짝 섞여있는 시원한 바람이 솜털을 세우면 가을이 나와 멀지 않은 곳까지 왔다고 미리 연락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연락을 받을 때마다 분위기 있는 가을옷을 꺼내 입고서 가을을 즐길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로 정했어!”
아무도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이야기를 불쑥해서 주제를 선점하는 편인데, 주로 남편 앞에서는 말로 막춤을 추는 듯 아무 말이나 신나게 한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흘려듣는 사람이라 아무런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모든 계절이 예뻐서 사계절을 차별 없이 두루두루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을의 기운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설렌 적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 순위 변화를 확실히 알게 되어서 꺼낸 말이었다.
남편은 가을이고 뭐고 무엇이든 정상범위를 중시하는 AI 로봇 같은 사람인데 생각의 흐름대로 조잘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정상범주로 돌아왔다고 판단하여 안심할 뿐이다.
“네가 가을이 좋으면 나도 가을이 좋아”
누군가 들으면 남편이 로맨틱하다고 하겠지만, 사실 이 말은 관리자의 입장에서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에서 나온 대답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어쨌든 우리의 일상은 정상범주로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피검사 수치로 임신을 확인하는 날부터 우리는 아기와 함께 셋이 있는 것처럼 상황극을 너무 많이 했었기에 유산 이후 슬픔이 거의 끝날 쯤에도 일상 곳곳에 숨어있던 상황극 장면들이 튀어나와서 슬픔을 잊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물었다.
그 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이미 고통의 영역에서 벗어나 망각으로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뇌가 하는 일 중에서 기억하는 것보다 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품었던 아주 작은 생명이 떠나고 나에게 남은 것은 시험관을 하면서 불안과 좌절로 보낸 시간들, 그리고 유산으로 얻은 상처였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멋진 말이지만 가능하면 안 아프고 성장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유산을 겪으며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지만 성장통은 조금이 아니고 많이 아팠다.
상실감은 내 몸과 마음을 할퀴고 간 듯 너덜너덜하고 빈곤한 감정이었는데, 마치 삶에 종지부를 찍은 듯 ‘나는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올 때는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 궁상떨고 있는 것 같아서 재빨리 다른 주제를 생각해 내야 했다.
하지만 상실감은 남겨진 삶을 위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불안정했던 그 많은 시간들도 내 삶의 일부인데 나는 왜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시험관을 하는 동안 불안해하지 말 걸.
자책하지 말 걸.
조금 더 기쁘게 살 걸.
....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공이 아닌, 성숙이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처럼 상투적인 말이지만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공이 아닌, 성숙’이라는 것을 되짚게 된다.
나는 성공하지 못한 대신 조금은 성숙해졌다. 성숙해질수록 삶의 태도는 단출해지지만 마음은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그것이 상실의 의미가 아닐까.
예측불가한 난임의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열린 결말을 씩씩하게 닫으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폭풍이 끝나면, 당신은 어떻게 폭풍을 헤쳐 나갔는지,
어떻게 겨우 살아남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폭풍에서 벗어났을 때,
당신은 더는 폭풍으로 걸어 들어갔던 그 사람이 아닐 거예요.
그것이 바로 폭풍의 의미입니다.
<1Q84 _ 무라카미 하루키>
***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아
당신의 걱정을 줄이고, 외로움을 무찌르고, 상처가 덧나질 않길. 살며시 손을 잡고 온기를 전해봅니다.